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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Mar 18. 2024

글자를 읽지 말고 글을 읽어야

추론하며 책 읽기

아이들에게 꽤나 자주 하는 잔소리이지마, 지금의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잔소리 중 하나가,

"얘들아, 책을 읽을 때에는 글자만 읽지 말고 글을 읽어야 한다."

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차이를 수긍하기 어려워한다.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글자를 읽는 것을 책을 읽는 것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글의 표면에 드러난 1차적인 의미만을 이해하는 독서를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독서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에 비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글자와 문장 이면에 숨겨진 내용을 독자가 책을 읽으며 논리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면서 읽는 것을 말한다.


특히 문학에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말할 때보다, 독자가 느끼게끔 간접 전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면 작가가 직접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착한 주인공과 대비되는 악당을 등장시켜 사건을 통해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당을 벌을 받는 구조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독자가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구조이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에는 나에게 주어진 정보만으로 주어지지 않은 상황까지를 미루어 짐작하며 읽어야 한다. 그렇게 작가의 반 발자국 뒤에서 작가의 생각을 따라 읽다, 어느 순간 작가의 생각과 나의 추론이 다른 지점을 만나면 잠시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추론하면서 책을 읽을 때, 이면에 감추어진 작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때 독자가 작가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동의도 할 수 있고, 비판도 할 수 있다.


천효정 작가의 '아저씨 진짜 변호사 맞아요'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는 작품이다. 주인공 롹의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롹의 엄마는 아이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3년째 전화 한 통화를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이 사실을 어린 손자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롹은 엄마가 일 때문에 엄청 바쁘고 그래서 집에도 오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주인공 엄마의 사정을 물어보면,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쁘다',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 있다' 등등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아이들은 드물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는 동리자는 얼굴이 예쁜 과부이다. 심지어 남편이 죽은 후에도 절개를 지켜 임금님으로부터 열녀문을 하사 받는다. 그런데 이 과부에게 자식이 다섯 있는데, 제각기 성이 다르다.


중학생 아이들과 연암의 작품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동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절개를 잘 지키는 여자라고 답한다.


두 번째 사례처럼 해석하면 동리자라는 등장인물의 성격은 정 반대가 되어 버린다. 호질은 겉으로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잘 지키는 척하면서, 뒤로는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는 양반의 위선을 해학적으로 꼬집는 작품이다. 그런데 동리자를 열녀로 해석한다면 이 아이들은 호질을 읽은 것일까? 읽지 않은 것일까?


소설을 읽을 때, 많은 아이들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작품을 이해하지 않고, 글자에 드러난 그대로의 뜻만으로 문장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전체 글을 오독할 때가 많다. 때로는 부분적인 오독이 전체 글에 대한 오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학을 읽을 때에는 글자의 겉으로 드러난 의미보다 그 이면의 숨겨진 저자의 의도를 읽는 것이 독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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