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민호 Mar 15. 2024

이 그림이 기억에 남아요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장면

지난 글에서 책을 읽고 아이들과 좋은 질문을 나누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했다.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때, 개방형 질문을 하라는 것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항상 요구하는 바가 하나 더 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유와 함께 설명해 달라는 요구이다. 인상이 깊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재미있어서 인상 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재미없고 지루해서 인상에 남을 수도 있다. 때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이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작가가 쓴 한 대목이 유독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인상이 깊거나 기억에 남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인상 깊다는 이야기는 그 부분이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점은 그 부분이 나에게 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본인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만약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그 부분이 나만의 개성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과 유은실 작가의 '마지막 이벤트'라는 작품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초등 고학년 학생들과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김리리 작가의 '나의 달타냥'과 유은실 작가의 '마지막 이벤트'를 연이어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두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소재로 다루기 때문이다. 세상에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 그러니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밝음과 행복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나머지 절반인 이별과 슬픔, 죽음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두 작품은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반쪽을 만나기에 좋은 작품이다.


물론 두 작품은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접근 방식과 이야기하는 바는 다르다. 그래서 연이서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고 책 이야기를 한다면 다양한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다.


한 아이가 마지막 이벤트의 앞부분에 나오는 그림 한 장면이 인상 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몇 번이나 거듭 읽었지만, 난 한 번도 주의 깊게 본 장면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 장면을 꼽았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재촉했다.


아이는 그 장면이 슬퍼서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아이의 설명을 들어도 왜 그 장면을 보며 슬픈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설명을 더 들어보았다. 


아이가 꼽은 장면은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손자인 주인공이 할아버지의 방에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행동이 나오는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림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이렇다.


할아버지의 방 벽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다. 그림의 중심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다 보니, 벽에 있는 가족사진의 그림은 작았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런 그림이었다. 그런데 가족사진에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빠와 엄마 누나는 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없었다. 


할아버지와 주인공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아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빠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할머니 또한 오래전에 이혼을 하고 아들 곁을 떠났다. 그 원망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사이는 원만하지 않다.


아이는 손자를 끔찍이나 사랑하는 할아버지인데, 자신은 빠진 가족사진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는 외롭고, 슬펐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가족을 사랑하니 방에 자신이 빠진 가족사진을 걸어놓았을 텐데,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했다.


아이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나 또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와는 친구 같은, 마지막 이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할아버지와 비슷한 그런 관계였지만, 경제적 무능과 오랜 병치레로 할머니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같은 책을 수십 번 읽어도 누군가에게는 보이지도 않던 작은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짠한 슬픔을 느끼게 한 장면이었던 거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가 다른 감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혼자 책을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감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다른 시선에서 다시 한번 책을 읽게 되는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이전 11화 책을 잘 읽은 아이는 질문을 잘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