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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Feb 26. 2024

아이들 독서에 대한 오해 2

역사도 만화로, 과학도 만화로, 심지어 철학도 만화로

“에피쿠로스는 유명한 철학자인데, 육체적 쾌락을 굉장히 중요하게 강조했던 철학자이고요.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아버지인데, 죄를 지어 독약을 먹고 죽었는데, 너는 누구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초등학생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에피쿠로스에 관해 짧게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에피쿠로스 하면 '쾌락'이라는 말이 동시에 떠오를 듯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에피쿠로스는 굉장히 억울해하지 않을까 한다. 쾌락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우리의 고정관념 상 쾌락을 떠올릴 때,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의 이미지 안에 담아두기에는 분명 억울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철학 책의 상당 부분이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 철학 책을 번역하다 보니 어휘를 선택할 때, 정확한 의미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하니,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


어쨌든 글의 서두에 인용한 글은 한 초등학생 아이의 말이다. 나를 포함해 남자들은 나이가 적으나 그리고 많으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외우는데 집착하고, 공룡의 이름을 외우는데 집착하기도 한다. 


나 어렸을 적은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리미 삼천갑자 동방사  치치카푸 사리사리...... " 맞는지 모르겠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대목을 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아이는 에피쿠로스난 철학에 관한 학습만화를 읽었던 것 같다. 난 에피쿠로스를 좋아한다. 내가 이해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제일 잘 설명하는 말은 '안빈낙도'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는 안빈낙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의 삶을 닮고 싶은 지 난 에피쿠로스가 좋다.


우리나라만큼 초등 비문학 도서 시장에서 학습만화가 시장을 장악한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름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해외여행을 갈 때면, 그 나라의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편인데, 우리나라 정도로 과열된 나라를 아직은 보지 못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난 만화책을 엄청 좋아한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동네 만화방에 아버지 손을 잡고 가서,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박봉성, 김철수 님의 작품을 잔뜩 빌려, 뜨듯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은 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추억 중 하나다.


이북 출신의 외할머니는 겨울이면 엿을 고아 밀가루를 묻혀 , 알사탕처럼 만들어 놓으셨는데, 만화책을 보며 할머니의 엿을 오물오물 입안에서 녹이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었던 심장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이제 할머니는 100세를 넘기셨다. 할머니와 함께 숨 쉴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플까 걱정되기도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하나도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소중한 만화의 추억은 지금의 학습만화를 생각하면 와장창 무너져 내린다. 


어린 초등학생이 만화를 읽으면서도 공부를 해야 할까? 만화를 읽는 순간만큼은 그저 온전히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선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만화를 읽는 어린 시절의 추억도 공부에 빼앗긴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학습의 측면에서 만화는 제구실을 하는 걸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 플라톤의 철학, 공자의 철학, 칸트와 에피쿠로스를 초등학생 아이에게 만화로 가르치려 할까? 한참 강연을 함께 다녔던 시절, 짝꿍과 같았던 철학과 교수님과 술 한잔 기울이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큰 산을 만나는데 그 큰 산이 칸트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감히 잘 몰라 뭐라고 대꾸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칸트도 초등학생들이 학습만화로 통달하길 원한다.


어른의 잘못이다. 이제 어른들은 독서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도, 사색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아이들의 독서에는 '학습의 효율성'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빨리빨리'의 문화가 식당 뿐 아니라, 어린이의 독서까지 침범해 들어온 셈이다.


나는 어린이가 읽기 어려운 책을 굳이 만화로 만들어 어렸을 때 읽기를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감히 묻고 싶다. 


"당신은 책을 사랑하시나요?"


내가 책을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내가 책을 읽는 어른이라면, 어린이에게 플라톤의 국가를 존 롤스의 정의론을 미셸 푸코와 칼 융의 이론을 만화로 만들어 어린이에게 읽게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심지어 그 책의 제목 앞에 '서울대'라는 명칭이 붙어다는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한다고 아이가 플라톤과 존 롤스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느 걸까?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학습만화 읽어도 공부에 도움이 안 돼요. 어차피 설명이 길게 나오는 부분은 안 읽고 그냥 넘어가거든요. 그냥 그림 나오는 장면만 대충 읽어요.”

“엄마가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하기는 싫고, 그때 그거라도 읽고 있으면 잔소리 안 해요.”

“어차피 독서록 때문에 책은 읽어야 하니까, 학습만화 읽으면 돼요. 그런데 한 시간만 지나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엄마가 먼저 사주셨어요. 이거라도 읽으라고.”


실제 학습만화에 관한 토론을 할 때, 학습만화를 많이 읽은 초등 고학년 학생들이 남긴 말이다.


어린이에게 만화를 만화로서 선물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출간되는 만화 월간지였던 '보물섬'이 나올 때 즈음이면 형이랑 누가 먼저 읽을지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만났던 둘리는 지금도 나의 베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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