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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Feb 23. 2024

아이들 독서에 대한  오해 1

명작과 고전 읽기

쉬는 날 오전, 오랜만에 아침부터 라면을 끓였다. 소파 앞 테이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과, 참치캔 하나, 그리고 잘 익은 김치와 하얀 쌀밥 한 그릇에 시원한 얼음물까지. 나름 내가 좋아하는 조합으로 만찬의 준비를 마치고, TV를 켰다.


리모컨을 누르며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오전 시간 대라 그런지 홈쇼핑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판매하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잠시 채널을 멈추고 어떤 책을 판매하는 지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출판사에서 나온 직원과 쇼호스트가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책이 재미있고 이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멘트를 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 쇼 호스트의 손에 있는 책을 자세히 살피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책의 분위기나 분량으로 보아 초등 저학년이나 중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집 같은데, 판매자의 손에 있는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캐츠비'였다.


위대한 캐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제목에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고 심지어 주인공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책의 상당 부분을 읽을 때까지 캐츠비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도대체 캐츠비는 언제 등장하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책을 몰입하게 하는, 그래서 특이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위대한 캐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던 미국인들이 당시 물질주의에 느낀 정신적 혼돈과 다양한 감정에 대해 묘사한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그 시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캐츠비를 차도 빼고 포도 빼고 얇게 만들어 놓은 책으로 초등학생이 읽고 그 책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까?


내 생각을 말한다면 절대 NO NO NO이다.


중학생들과 조지 오엘의 '동물 농장'을 함께 읽는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 '동물 농장'을 읽어 본 경험이 있다. 아마도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그런 류의 책으로 접했을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 때 동물 농장을 읽어 본 학생 중 동물 농장이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쓴 소설임을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그저 말 그대로 동물 농장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농장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라도 동물 농장을 제대로 읽어 볼 기회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왜 동물 농장이 훌륭한 작품으로 꼽히는 지를 느껴볼 수가 있겠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동물 농장을 읽고 그저 그렇게 지나친 학생은 영원히 동물 농장의 진가를 느껴 볼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를 생각해 보자. 백설 공주와 신데렐라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수동적인 여성이다. 아마 딸을 키우는 부모님 중에 내 아이가 커서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처럼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거다. 백설 공주도 신데렐라도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인물이니 말이다.


이에 비해 가시내나 종이 봉주를 보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진취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오히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훨씬 멋있는 여성상이 등장한다. 유럽에서도 동화와 아이의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등장한 작품 중에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약간은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라 여길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오래전 작품을 현대적 시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이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를 읽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동화나 어린이 책에 대한 어른의 고정관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명작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큰 일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고전이라 일컫는 책들은 만만한 책들이 아니다. 고전을 굳이 어린이가 읽게 만들기 위해 상당 부분의 내용을 빼서 분량을 적게 만들어 어린이에게 일찍 읽게 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을 이한 것일까?


지금은 세상에 아이들이 그 나이에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다. 그래서 그 좋은 책들을 읽어도 다 못 읽는데,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생이 되어, 혹은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어 읽어도 충분한 책들을 어린이용으로 만들어 일찍 읽는 것은 어른의 욕심일 뿐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만약 조지 오엘이라면? 내가 만약 스콧 피츠제럴드라며? 자신의 소설을 마음대로 가위질해 내용을 짜깁기 한 책을 어린이들이 읽는 상황이 즐거울까?


문장 하나를 의미 없이 쓰는 작가는 없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에 불필요하다고 여길 내용이 있을 리 없다. 작가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편집한 고전이 훌륭한 책일 리 없는 이유이다.


아이가 여덟 살이라면, 아이가 열 살이라면, 그 나이에 맞는, 그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읽자. 여덟 살 아이가 위대한 캐츠비를 읽는다고 개츠비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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