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9. 오펜하이머, 프로메테우스 2부
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9.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버드&셔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2부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같은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지 알아봅니다.)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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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9.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버드&셔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1부
핵분열은 크고 무거운 원자핵이 외부의 강한 힘으로 쪼개지는 현상을 말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바륨, 크립톤, 스트론튬, 제논과 같은 더 가벼운 원소로 쪼개지면서 에너지와 중성자를 함께 방출한다.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아서 위대한 성취의 순간, 환희의 감정 주변으로 상실, 외로움, 질투, 두려움, 분노와 같은 파편들이 튀어나오면서 부정적 에너지를 방출한다.
인간은 참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어요. 즐거움이나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병보다 더 나쁜 것이 있을까요? 그게 바로 우울증입니다. - 스탠포드대 사폴스키 교수
오펜하이머의 찐 사랑이자 불륜녀이기도 한 진 태트록은 '매우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애정보다는 창조성을 갈망했고, 세상에 이롭게 쓰이는 좋은 도구가 되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힘겹게 의대 과정을 끝내고도 환자의 삶을 살리는데 집중할 수 없는 병원의 관습적인 일들에 고통스러워했다. 1936년 가을 무렵엔 내전으로 곤경에 빠진 스페인 공화국을 돕는 것이 그녀를 사로잡은 가장 중요한 대의였다. 그 방법이 공산당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친구이면서 가끔 연인이기도 한 애매한 관계에 머무는 사이, 오펜하이머는 키티와 사랑에 빠졌고 '맨하튼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진과는 완연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진의 입장에선 그가 자신의 야망 때문에 사랑과 대의를 모두 저버린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진은 오펜하이머가 '원자 폭탄 개발'의 총책임자를 맡은 후 생긴 최초의 사상자라고 할 수 있다(진은 자기 아파트 욕조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요... 나를 사랑했고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보냅니다. 살아서 보답하고 싶었지만 무력감에 빠지고 말았어요. 나는 이해하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일생을 남에게 부담이 될 것 같네요. 적어도 노력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부담을 덜 수는 있겠지요. - 진 태트록
로스앨러모스에 미 전역의 과학자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독일보다 빨리 원자 폭탄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갈아넣어야 달성가능한 목표였기에, 그들에게 가족을 돌볼 여유따윈 없었다. 남자들은 오랜 시간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그들의 아내들은 고립감에 빠졌다.
우리 뒤로 거대한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친구와 가족들이 사는 세상은 더 이상 내게 실재하지 않았다.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가끔 술에 취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사고를 잘 치는 편이었고, 술을 마시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오펜하이머의 친구 홉슨에 따르면 키티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만 속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향에 더해 외딴 곳에 고립된 상태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육아에까지 약영향을 끼쳤다. 딸이었던 토니를 지나치게 관리하고 신경질적으로 대한 것이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항상 엄마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독립적으로 자라지 못했다(토니는 아버지 사망 10년 후, 그가 지은 해변 오두막집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다'라는 오펜하이머의 말은 트루먼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 그가 원자 폭탄을 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발사 명령을 내린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원폭의 아버지'가 보인 월권 행위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듯한 행동은 강대국과 대치하며 매순간 책임과 비난이 따르는 결정을 내려야하는 트루먼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핵분열을 이용한 우라늄, 플루토늄 폭탄 개발이 한창일 무렵, 텔러는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 폭탄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있었다. 핵융합은 태양 내부의 반응을 본뜬 것이었고, 이는 폭발에 물리적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원자 폭탄보다 수천 배 더 파괴적인 무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의 개발이 핵무기 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 자명했기에 반대의 입장에 섰고, 원폭을 개발한 자가 더 강한 수소 폭탄 개발은 가로막는 행동에 텔러는 배신감과 조바심을 느꼈다(이후 텔러는 오펜하이머의 죄상을 고발하러 FBI에 갔고, 자신은 '수소 폭탄의 아버지'가 되었다.).
당신이 루이스와 무엇인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처음에 당신이 바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당신이 반역자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스트로스는 병적인 야심가였고, 집요한 데다 대단히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펜하이머 역시 비슷한 성향이 있었기에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둘은 서로에게 위험한 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처럼.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그들이 가진 재능에 있었다. 원폭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영웅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에게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핵인싸와는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본능적 감각으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이사장 시절부터 오펜하이머를 연구소장으로 추대하며 극진히 대접했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무시였다. 결정적으로 한 청문회에서 스트로스가 낸 방사능 동위 원소 수출 반대 의견에 대해 오펜하이머가 조롱에 가까운 발언으로 일축한 사건은 스트로스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폭발시켰다. 이를 계기로 '정글 속의 야수'가 된 그는 오펜하이머의 존재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스트로스기 이끈 '핵 비밀주의 연대'는 '좌파'로 보이는 오펜하이머의 평판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통상적인 법적, 윤리적 제약은 무시하였다. 그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불륜행각의 세세한 대화 하나까지 까발려졌으며, 그의 주변 가족, 친구를 팔아넘기도록 요구했고, 오펜하이머 자신도 기억나지 않는 말과 행동(FBI가 불법 도청으로 수집한 자료)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일종의 현대판 '마녀 사냥'을 통해 스트로스는 자신의 느꼈던 수치심을 곱절로 되갚아 주었다(몇년 후 공개된 청문회 녹취록으로 인해 스트로스는 동료들의 신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공직 경력도 끝장났다.).
자네가 이룬 성취의 결과에 대한 대가를 직면해야 하는 거지
자신도 뼈져리게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더 뼈아프다.
누구에게나 성취는 기쁨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게 위대한 성취라면 더욱더...
알버트, 파멸의 연쇄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
오늘 읽은 책 한쪽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