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9. 오펜하이머, 프로메테우스 1부
이야기의 모든 것, 영화와 소설 9.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버드&셔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1부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같은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지 알아봅니다.)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Magnum photos, Esquire
물리학자 '줄리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앨러모스 과학 연구소장직을 맡아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 개발을 이끌었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자, '원자 폭탄의 아버지'라 불리었다.
사회운동가 '로버트'는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및 여러 정부기구 자문 활동을 하며 핵무기 개발을 위한 과열경쟁을 막고 원자력 에너지 사용의 적절한 통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군축의 아버지'라 불리었다.
'줄리어스'는 미국의 영웅 대접을 받았고, '로버트'는 공산주의자 취급을 당했다.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수많은 정적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반된 활동을 하였던 두 사람은 사실 동일 인물이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인류를 핵 시대(핵무기, 방사선 치료기, 가속기, 비파괴 검사 등에 활용, 특히 원자력 발전은 현재 대한민국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로 이끌었고, 나중에는 핵전쟁의 위험을 없애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 그는 왜 두 얼굴을 하게 되었을까?
그렇소. 긴 여정이었지요. 나는 당신을 로스앨러모스 총책임자로 뽑은 것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브스
맨해튼 프로젝트.
독일 나치스 및 파시즘에 맞서고 2차 세계 대전, 나아가 전쟁 그 자체를 종식시킬 강력한 무기 개발 계획이다. 이런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할 인물로 오펜하이머는 적합한 인물이었을까? 대외적으로 알려진, 군 지휘관 입장에선 임무를 맡기기 꺼림칙한 것만 해도 세 가지나 있었다. 첫째, 오펜하이머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었는데, 그가 이끌어야 할 많은 동료들이 노벨상 수상자였다(과학자들은 남의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하다. 특히 자기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둘째, 그는 정부기관에서 행정 경험을 해본 일이 전혀 없었다. 셋째, 공산당에 입당할 만큼 명백한 공산주의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등 정치적, 사상적 배경이 의심스럽다(심지어 옛 연인과 현 부인은 과거에 활발하게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프로젝트 당시는 소련이 나치 독일 못지않게 세력을 키우고 있는 시절이었다.).
그 세 가지가 전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길 원했고, 탁월함을 동경했다. 그러한 성향은 남의 말을 끊는 등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로 드러나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수의 간식(사과)에 독을 발라놓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거기에 우울증 병력까지... 아무리 봐도 지도자 감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브스의 눈에는 오펜하이머의 개인적인 야망이 그의 충성을 보장했다.
불타는 야망은 그로브스가 존경하고 신뢰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그 자신과 오펜하이머의 공통점이었고, 그들은 단 하나의 초월적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파시즘을 분쇄하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변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젊은 시절 앓았던 우울증이나 마음속의 의심, 질투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가장 깊은 공포나 욕망을 알아내어 어루만지는 능력이 되었고, 최고의 재능들과 함께했기에 특유의 오만함도 사라졌다. 위험한 상황에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그의 성향은 독일이 폭탄 개발 경주에서 이미 앞섰을 거라며 초조해하는 과학자들의 동요를 막고 카리스마 넘치게 목표로 향하게 했다. 논리 정연하게 지식을 통합하고 빠르게 핵심을 짚는 그의 능력은 속도전으로 진행된 원폭 개발에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이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죽음이, 이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 - 원폭 실험 성공 후
오펜하이머가 원폭 개발에 참여한 이유는 명확했다. 나치를 물리치고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 분명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일본)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거기까지는 그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는 전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다. 원자 폭탄의 위력을 본다면 다시는 그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2023년 현재까지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렇지만 핵무기 개발까지 멈춘 건 아니었다. 1945년 8월, 두 발의 원자 폭탄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열전을 끝냈지만, 수소 폭탄을 위시한 핵무기 개발 경쟁이 된 냉전의 시작을 알렸다.
'무제한적인 파괴력을 지닌 무기(수소폭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 세 가지
첫째, 이 무기는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절대적인 안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미국의 현재 핵 보유량만으로도 충분한 전쟁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셋째, 우리가 그와 같은 계획을 추진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수소 폭탄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반대로 미국이 슈퍼 폭탄을 개발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나라들을 고무하여 똑같은 무기를 만들게 할 것이다. - 메모, 원자력 에너지의 국제 통제
오펜하이머는 여론을 수렴하지도 않고, 연구 결과에 대한 솔직한 평가 없이 비공개로 이루어진 수소 폭탄 개발 결정을 반대했다. 두려움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만 정보를 공유하는 비밀주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오직 과학에 기반을 둔 '열린 세계'에서만 원자력 에너지의 국제 통제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대통령 각하,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주의자들을 화나게 했으며, 비밀주의에 반대하던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씌워 폭탄 개발 관련 비밀 취급 인가를 빼앗았다. 마치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며 집주인을 집에서 내쫓은 격이다.
비밀 취급 인가를 빼앗은 청문회로 그들은 오펜하이머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 오펜하이머의 유명세를 드높이는 결과도 가져왔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이제 박해받는 과학자 '갈릴레오'가 된 것이다.(*비밀 취급 인가 취소 관련 혐의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은 2022년이 되어서였다.)
한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마주한다. 그것들은 상호작용하며 인물을 변모시킨다. 마치 하나가 아닌 두 가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모순적 인간 오펜하이머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가 '전형적 인간'이 아닌 '입체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안의 죄의식에 가득 찬 어두운 생각들을 그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 생각이 인간 조건의 일부임을 알고 위안받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혐오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준다. (2부에서 계속)
오늘 읽은 책 한쪽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