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분초사회'에서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각화 자료가 중요하다. 능력치 파악이 용이한 육각형 그래프도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모든 기준 축이 끝까지 꽉 차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 정육각형이 되기 때문에 육각형은 완벽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 축구게임에서 선수의 능력치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던 것을 현실에 갖다 쓰기 시작한 것이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성향, 집안 6개의 항목을 가지고 서로를 비교해 일렬로 줄을 세운다. 각자가 어느 정도 점수이고 몇 등 정도 하는 지를 보고 '잘살고 있다'는 인정의 지표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육각형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게 된다.
각종 소셜미디어 덕분에(?) 우리는 매일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과 무한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은연중에 완벽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린다. 현대인의 우울증 급증이 SNS 때문이라는 날 선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인간은 비교하는 존재다. 예전에도 '엄마친구아들'과 무수한 비교질을 당했었다. 어차피 그렇게 생겨먹었다면 다시 태어나야 얻을 수 있는 '집안' 능력치 부재로 절망하는 짓 따위는 집어치워라. 그럴 시간에 차라리 분초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능력치를 찾아 '육각형' 놀이를 제대로 비틀어 보자.
1. AI 활용능력
새롭게 등장한 '생성형 AI'는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음악을 만든다. 인간의 영역으로 여겼던 창작이 가능해졌다. 학습한 데이터를 조합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최고 수준이라 부르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보인다. 하지만 10초도 채 걸리지 않는 제작 속도는 창작에 있어 엄청난 이점이다.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 서비스 활용의 핵심 열쇠는 좋은 질문이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어떻게 질문했느냐에 따라 결과의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좋은 질문과 AI 기술이 결합하면, 가지지 못한 육각형의 빈자리도 채울 수 있다.
2. 가치 세팅 능력
가격은 쉽게 말해 '고객이 느끼는 가치'다. '나'라는 제품도 상황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납득할 만한 가격 차별화를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SNL의 '오징어라이팅' 코너에서는 어느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소개팅남의 가치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육각형게임은 상대평가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
3. 도파민 생성 능력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좇는 존재이다. 돈도 안되고 의미, 목적이 분명치 않아도 그냥 재미가 전부인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그들을 겨냥하여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상황이 주는 일탈의 재미로 도파민을 마구 분출시키는 한 남자가 있다. 충주시 홍보맨이다. 충주시 인구가 20만인데 유튜브 구독자는 50만을 육박한다. 왜 다른 시민들은 충주시 홍보영상을 볼까? 재밌으니까. 진지해야 할 공무원은 B급 감성맨이고, 홍보영상이 홍보보다 재미를 추구하며, 행사도 '뽀샵'하지 않고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똘끼충만인데 속에 트렌디함이 있다. 1초 홍보도 있다. 홍보맨이 전달한 신선한 재미는 충주시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자체로 만들었다.
4. 부업 실험 능력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내가 가진 업을 기반으로 색다른 역량을 분리, 파생시키려는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고, 직장에서 이루기 힘들었던 자기 계발을 실천하며 창업이나 이직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이때의 부업은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한 일이 되어선 안된다.
우선, 스스로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장하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본업에서 쌓은 경력과 역량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여 성공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취향 선언 능력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취향 선언은 악플러들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동시에 열렬한 지지자들의 응원도 얻을 수 있다. 콘텐츠나 상품의 구매 전환은 취향, 관점이 일치하는 '열혈 팔로워'에게서 나온다. 나를 추종하는 1,000명의 팬만 있으면 크리에이터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취향을 선언하고 일관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구매 의사결정을 추종하는 창작자에게 맡기는 것을 '디토소비(ditto: "나도"라는 뜻)'라고 명명했다. 디토소비자는 창작자의 관점을 따라가며 제품에 담긴 해석과 감성을 구매하게 된다. 확고한 취향과 스토리를 가진 '인플루언서'는 자연스럽게 방문매장의 VIP가 되는 것이다.
6. 돌봄 능력
개인주의 사회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경제적 조건은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보이지 않는 가슴'이다. - 낸시 폴브레 매사추세츠대 경제학과 교수
시간에 쫓기고, 완벽주의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면 언제든 번아웃이 올 수 있고 누구나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제 돌봄은 어린이와 노약자만의 이슈도, 가족만의 의무도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다. 언젠가 내가 가장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학 용어 중 '시간선호'라는 개념이 있다. 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보다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시간선호를 점진적으로 낮춤으로써 저축, 투자 등의 행위를 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돈만 그런 게 아니라, 돌봄도 저축과 투자가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약자에 대한 돌봄이 골고루 이루어지는 사회야말로 시간선호가 낮은 사회이다. 돌봄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다. 영향력이 연쇄적이다. 조금은 가깝고 또 조금은 느슨하게 서로 기대설 수 있게 하는 돌봄 능력은 돌고 돌아 필요한 시기에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