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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Nov 16. 2023

트렌드라는 파도

시대착오적

: 낡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지 못하는 성질을 띤 것


지난주 일요일 개그콘서트가 3년 반 만에 부활했다. 1999년부터 20여 년 간 일요일 밤을 즐겁게 해 주었던 공개코미디의 부활이란 점에서 반가웠다. 왕년의 개콘 레전드와 유튜브 스케치 코미디 채널로 뜬 뉴페이스들이 어우러져 만든 다양한 코너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10여분 동안 시청하면서 든 생각은 '시대가 참 많이 변했구나'였다. 넷플릭스, 유튜브를 통해 원하는 시간에 내 취향에 딱 맞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게다가 3년 전 휴방 할 때 비판받았던 자학, 외모, 약자 비하, 인종 차별적 소재를 활용한 개그도 여전했다. 예전엔 분명 통했던 반복적인 단어 활용, 신체 노출을 통한 무리수 개그는 박장대소 대신 헛웃음을 일으켰다. 분명 공영방송이란 점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그로 인한 자체 내부 검열 때문에 아이디어가 많이 제한된 부분도 있을 테다. 이해는 간다. 아무튼 호기롭게 부활했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안쓰러웠다. 마치 쥐라기를 호령하던 티라노가 빙하기의 추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모습이랄까. 빙하기 같은 변화에 대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볍고 기민한 몸집이 유리하다. 개콘이란 공룡보다 'SNL', '피식대학, '싱글벙글' 같은 생쥐들이 트렌디한 이유다.

추억의 프로그램이 힘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출처: KBS


트렌디(Trendy)

: 최신 유행의


보드를 타고 파도에 따라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서핑이라고 한다. 파도에 대한 대응 역량에 따라 거대한 물결 사이를 자유자재로 뛰어넘기도 하고, 휩쓸려 꺼꾸러지기도 한다. 트렌드도 하나의 파도다. 멋모르고 막 닥뜨리면 뒤처지거나 삼켜지는 위기가 되지만, 제대로 올라타면 '떡상'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트렌디'하다는 것은 나의 사상이나 행동이 시대정신과 '싱크'가 맞다는 뜻이다. 싱크를 맞추려면 다가올 트렌드를 알아야 할 텐데 내년의 트렌드는 과연 뭐가 될까. '트렌드 코리아 2009'를 시작으로 매년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분석해 온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2024년의 대표 트렌드로 '분초사회'를 제시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한 순간도, 단 1분 1초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
시간의 양을 늘릴 수 없다면
시간의 밀도를 늘려라
 - 책 '워라밸의 시대! 하루 3분 시간 관리' 중에서


'가졌다'보다 '해봤다'가 더 트렌디해지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돈이 많으면 비싼 물건의 양은 늘릴 수 있지만, 시간의 양은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시간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선 1분 1초까지 쪼개 쓰겠다는 마인드가 필요해졌다. 이른바 '시간지상주의'시대 5계명은 다음과 같다.


1) 돈보다 시간을 중시하라.

2) 사용 시간 단위를 조각내라.

3) 여러 일을 함께 처리하라.

4) 일단 결론부터 확인한 후 일을 진행하라.

5) 실패 없는 쇼핑을 위해 취향이 닮은 인플루언서를 확보하라.

- 트렌드 코리아 2024 참고


특명. 실패한 시간을 줄여라!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원이라고 할 때, 가장 아까운 시간은 '실패한 시간'일 것이다.

'실패한 시간'이라고 하면, 재미도, 감동도, 의미도 없이 '3무'로 보낸 시간일 것이다. 시간을 허비하고 싶어 하지 않다 보니 사회상도 많이 달라졌다.


(3무 콘텐츠 No!) 결론을 빨리 알고 싶어 '스포 포함' 혹은 '결말 포함'을 명시한 요약본의 조회수가 높아졌다.

(3무 인간관계 No!) 재택근무를 선호하고 출근일 점심시간에도 혼자 식사를 하고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3무 쇼핑 No!) 인공지능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제품 추천 기술'로 내 취향을 아는 쇼핑몰에서만 구매한다.

(3무 여행 No!) 창신동 창창을 보라. 스토리와 스타일이 있는 곳이라면 낙후 지역의 120미터 언덕길도 문제없다.

서울 안의 작은 홍콩, 창창. 출처:글로우서울


시간이 모든 고려대상의 1순위가 되면서 밀려난 것은 '미지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전엔 체험해보지 않은 것에 가치를 두었다면 요즘 트렌드는 알 수 없는 앞날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기대보다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힘은 덜 들이고 실패는 피하고 싶은 것이다. 콘텐츠는 엑기스만 잽싸게 확인하고, 남녀만남에선 MBTI에서부터 월급명세서, 건강검진 진단서까지 꼼꼼히 따진다. 쇼핑은 내 취향을 아는 AI와 인플루언서에게 맡기고, 여행은 힙하다고 검증된 곳만 다닌다. '시간 중시'가 '안전 지향'이란 말과 동의어였던가? 잘 모르겠다.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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