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끄적쟁이 Nov 02. 2023

프롤로그 - KKK(ㅋㅋㅋ) 대한민국

커버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슴이 웅장해지는(?) K-콘텐츠


K를 달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콘텐츠의 위상이 대단하다.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이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K-콘텐츠라면, 손흥민, 김민재, 페이커는 스포츠를 대표하는 K-콘텐츠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한류'가 일본, 중국 및 아시아계 외국인에 국한된 ‘니치(niche) 마케팅'*이었다면, 지금은 그 당시 염원해 마지않던 전 세계 주류문화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니치(niche) 마케팅: 남들이 모르는 좋은 낚시터를 의미, 특정 소규모 소비층을 상정하고 그들의 니즈를 충실히 연구하고 반영하는 일종의 틈새시장


받침이 있는 한국어 이름은 외국인이 정확하기 발음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JG가 아닌 정국, HM이 아닌 흥민이라는 이름 그대로 활동한다(Sonny로 더 유명하지만...). 이제 상대의 편의에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보여줄 만큼,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도 그에 대한 외국인의 이해와 애정도 늘어났다. 그런데 K-콘텐츠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K에서 'Korea'의 색깔은 옅어지고 있다. K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한껏 세련된 느낌' 때문인데, 그런 팬들에게 'Do you know PSY?'류의 질문을 퍼붓는 건 이제 한국사람조차도 부끄럽기 때문이다. K들은 더 이상 한국문화가 유명해졌다고 '국뽕'에 차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데나 갖다 붙인 KKK를 ㅋㅋㅋ거리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엉망진창이 된 잼버리를 뉴진스로 틀어막지 말라며 비판을 쏟아낸다. 이제 대한민국의 K들은 국가주의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K가 점차 확장되는 만큼 K는 쪼개져서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K는 개별 콘텐츠가 이룬 성취에는 박수를 보내되, 대한민국의 성과라고 퉁치는 건 옳지못하다고 여긴다. 출처: 나무위키


청담은 한국보다 크다


K는 아무개가 한국에 사는 건 부러워하지 않지만 청담동 129번지에 사는 건 몹시 부러워한다. 그건 '더펜트하우스청담'에 산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K에겐 국가보다 내가 사는 곳이 중요해지고 있다. 대한민국보다는 서울특별시가, 그보다는 강남구가, 그보다는 청담동 129번지가 나를 더 잘 드러내는 간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청담129번지언'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국가, 국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도시와 주거공간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이다. 구구절절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명징한 이미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자신에게 꼭 맞는 세계를 원한다. 그게 청담129번지일수도, 페라리의 차키, 집행검, 별풍선일 수도 있다. 답답한 현실 속의 내가 아닌, 내가 바라는 자아로 만들어주는 세계를 위해서라면 미친 소비도 기꺼이 정당화한다. 26년 전, 신문기사 속에서 '나라가 망했다'라는 헤드라인이 등장한 순간 시작된 '각자도생'할 결심은 K를 이렇게 진화시켰다.

인스타 속 남의 '세계관'에 빠졌다간, 나의 세계는 완전히 붕괴된다.


분열되는 세계


쪼개지고 흩어지고 있는 건 K만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세계도 분열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은 시작일 뿐이다. 세계화의 물결에 억지로 봉합되어 있던 것들 중, 가장 약한 고리부터 갈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 현상은 '전 세계의 접착제'를 자처했던 미국의 접착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오랜 기간 잠에 빠져 있던 중국이 깨어나면서 양국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에 맞서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곳을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해졌다. 게다가 셰일혁명으로 자원, 기술, 자본 3박자가 자체 조달 가능해지면서 다른 나라를 도와줄 필요성도 희미해지고 있다. 문제는 K에게 이 일이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우리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최인접국이다. 중국에 전쟁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 한반도가 온전할리 없다. 그만큼 지리적, 경제적으로 얽혀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다. '러-우, 이-하' 관계만큼이나 '남-북'도 약한 고리이다. 지금 현재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은 언제 전쟁이 '재개'되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나 북한이 정치,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핵무기'라는 카드까지 쥐고 있다면 말이다.


지금 우리 세상은


쪼개지고 흩어지는 다양한 세상은 평범한 K에겐 불리한 환경이다. K는 오랜 기간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교육받아 왔다. 동질성 강박이 몸에 배어 있다. 다른 언어권 사람들과의 교류 기회가 적었다. 불행하게도 착실히 교육받고 살아온 '보통 한국인'이라는 게 외려 적응을 방해하는 시대가 되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서, K를 가슴에 새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당신에겐 삶을 수정해 나갈 나침반이 마련되어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