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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Oct 06. 2022

전기,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8. 에너지 빅뱅, 그리드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8. 에너지 빅뱅, 그리드

(연관성이 있는 2권 이상의 책을 엮어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


  코로나19, 러우 전쟁, 미중 갈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은 생존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식량과 에너지' 2가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중 에너지는 기후 위기, 자원 편중에 따른 지정학적 갈등, 빈부격차에 의한 가용자원의 차이 등으로 인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대립이 첨예한 영역이다. 화석연료(석탄, 석유)를 예로 들어보자. 화석연료는 생산, 사용 중 탄소 배출로 지구온난화의 주요인이다. 수요의 감소(코로나19) 요인이 발생하면 가격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로 가기도 하고(석유 현물이 아닌 선물), 공급의 위기(러우 전쟁)가 생기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도 한다. 평온한 시기에는 경제,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쾌적하게 여름, 겨울을 날 수 있게 돕기도 하고, 갈등, 분열의 시기에는 나의 숨통을 조여 오는 악마(러시아?)가 되기도 한다. 기후 위기 대응에 앞장서 있던 독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 현재 화석연료는 나쁜 에너지인가, 좋은 에너지인가?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인에게 에너지 가격대란 속 원자력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1조 와트시(Wh) 전력량 생산에 따른 에너지원별 사망자 통계
(에너지가 남기는 죽음의 발자국)

화석에너지 : 석탄 10만 명, 석유 3만 6천 명, 천연가스 4천 명
핵에너지: 원자력 90명
신재생에너지: 태양광 440명, 풍력 150명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


  이렇게 치명적인 에너지이지만 인류의 문명은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져 왔다. 에너지의 발전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의 진보도 없었다. 불이라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1만 년 전에는 나무를 이용했고, 18세기 중반부터 석탄, 19세기 중반부터는 석유가 앞 시대의 연료를 차츰 대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구를 망치는 악마의 에너지로 취급받는 석탄이 없었다면, 나무가 계속 연료로 이용되었을 것이고 지구상의 모든 나무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숲이 늘어나고 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한 시기가 석탄 사용이 본격화된 다음부터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넥스트 에너지원인 전기가 석유나 석탄 등 기존 에너지원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열에너지, 운동에너지와 함께 빛 에너지도 동시에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열, 힘, 빛으로 언제든 변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손실 없이 먼 거리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고, 광범위한 영역에 동시에 공급할 수 있다. 전기가 사용되기 전과 후의 세상은 혁명적 변화 그 이상이다. 그러나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 석유, 우라늄 등 연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기는 1차 에너지원이 아니라 최종 에너지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아직 화석연료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시대 전환은 에너지 분야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염물질을 내뿜는 화석연료 의존을 끝내고 친환경 연료로 전기를 만들어 수요를 충족해야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다.


전기 인프라, 그리드

전기는 바나나(물품)와는 전혀 다르다. 전기는 상자에 넣어둘 수도, 저장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다. 이 제품은 사용자가 공급원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더라도 언제나 만들어지는 순간 사용되며, 만들어지는 즉시 배송된다.

'그리드'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계, 그리드는 전기 소비와 생산이 매 순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전기는 나중에 사용하려고 저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 결국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는 전력은 항상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풍력, 태양, 파도처럼 예측할 수 없는 연료원에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 즉 가변 발전소가 문제다. 태양광에서 전기를 얻는다는 말은, 햇빛이 지상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전력도 없다는 뜻이다. 미국의 예비 전원은 전체 가용 발전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데다 오염에도 치명적이다.(석탄발전소, 폐로 시기가 가까워진 원자력 발전소) 전력을 저장하는 수단이 아직 마땅치 않다는 점은,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예비 전력이 거의 없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과잉 생산되어 남은 잉여 전력을 처분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똑똑한 전기 인프라, 스마트 그리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스마트그리드

피크 시간대 수요의 5~10%를 줄이면, 전력을 전력 시장에서 비싸게 구매해 오거나 낡고 오염 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발전소를 가동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듭니다. 피크 시간에 늘어나는 전력 소비량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전력 공급의 비용도 줄고, 환경을 고려해도 이익이지요.

그렌 플레이시먼(기술 저널리스트)

  스마트그리드만으로는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없다. 실제로는 그 반대일 텐데, 유틸리티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리드로 바뀌는 것은 전력소비가 이뤄지는 '시간대'다. 전기 가격은 밤에 가장 저렴하고(수요가 가장 적기 때문) 수요가 몰리는 17시에서 22시 사이에 가장 비싸다. '스마트'그리드는 피크 부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컴퓨터를 활용한다. 실제로 유틸리티가 원하는 것은, 전기 생산 비용이 가장 비싼 순간에 당신이 전기를 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것(시원한 바람을 맞기)과 그들이 바라는 것(피크 부하를 피하는 것)은 무더운 여름날에 서로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그 구조적 충돌이 임계점을 돌파하면 발생하는 것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다.


전기, 네버 스탑!


  중대한 재난을 겪은 이후, 인프라 개혁의 핵심 구호가 "독립성"이 아닌 "회복력"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회복력'이란 하나의 타격으로 인해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능력을 뜻하며, 외부 충격에 의해 변형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인프라를 뜻한다. 정보 네트워크에 접근해야 하고, 보안을 유지하는데 전기가 계속 공급되어야 하는 산업(예컨대 전자 잠금장치, 전기 키 패드, 금속 탐지기, 감시 카메라와 같은 장비를 사용하는 산업)에 짧은 정전은 그야말로 재난이나 다름없다. 오늘날에는 돈조차 물질적이기보다는 전기적이다. 폭풍이 그리드를 파괴하면, ATM은 작동하지 않고, 예금이나 투자 시스템이 사라지며, 종이나 금속으로 제작되지 않은 통화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이를 모니터링할 수도, 사용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게 된다. 전력 산업과 같이 복잡한 산업에서, 완전한 정보에 기반한 완벽한 통제라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는 목표를 지향하기보다는, 심각한 재난을 회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른 형태의 모델을 지향하는 시도가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리드 운용의 핵심은 불완전한 정보가 안전하고 지속적인 운용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자가 알고 있듯이, 다양성은 강력한 포트폴리오의 본질이다. 전력 생산, 송전, 배전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멈추지 않는 전기를 위해 오늘날의 트렌드는 전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보다는 그것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미래에 에너지를 더 청정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면, 재생에너지에 의해 과잉 생산되는 전력들을 저장해 놓는 방법이 필요하다.


에너지의 미래: ESS(에너지 저장 장치)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 저장 방법을 찾는 것은. 모든 전력 산업 이론가가 꿈꾸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케치를 시제품으로, 시제품을 실증 모델로, 그리고 다시 실증 모델을 양산품으로 바꿔내는 일련의 힘겨운 개발 과정이다. 테슬라는 전기차를 통해 증명한 개발 능력을 파워월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하려 하고 있다. 가정용 에너지 저장 장치인 파워월은 낮 시간에 생산되는 잉여 전력을 야간에 활용하도록 모아 둔다. 이렇게 저장된 전기 에너지는 비가 내리는 낮 시간이나 길고 어두운 밤을 위해, 즉 극한 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테슬라 파워월 배터리에 대한 일론의 트윗


  그리드 관계자들은 전기차를 소규모 그리드에서 생긴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완충하기 위해 활용될 수 있는 설비로 간주한다. 배터리는 특정한 장소에 속박되지 않고도 가동되는 에너지 저장 장치이다. 확장 가능하고 비교적 효과적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동이 편리하다. 거기에 전기자동차가 더 환호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심야에만 충전하도록 설정될 수 있는 (상당히 큰 야간 부하를 전력망에 가하는) 희귀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터리가 그리드를 뒷받침해 준다면, 우리는 오염을 유발하는 발전소를 크게 줄인 상태에서 더 많은 청정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자동차는 전체 사용 기간 가운데 단지 3~5%만이 활용되는 '매우 바보같이 사용되는 자산'입니다. 만약 그리드에 연결할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 그리드에 다시 에너지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자산 이용률이 치솟아 95~97%에 이르게 될 겁니다.

미공군 고르긴 푸어 박사

  미국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41%는 건물, 즉 사무실과 상점, 가정에서 쓰인다. 본질적으로 바퀴 위에 올려진 큰 배터리라고 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가 가정이나 사무실 옆에 위치한다면, 그래서 건물에 필요한 전기를 스스로 만든다면, 건물 소유주는 건물에 필요한 전기 저장 시설에 투자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그리드 소유주, 즉 유틸리티에게도 마찬가지다. 전기는 여전히 공공 그리드에 의존하고 있지만, 전력 저장 장치는 완전히 사적 소유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동차를 구매한 것은 당신이기 때문에, 저장 장치를 보유한 것도 당신이다. 유틸리티들은 낮 동안 자신들이 당신의 차에서 전기를 뽑아 간만큼 시간당 일정액을 입금할 것이며, 반대로 당신은 밤이나 재생에너지가 과잉 생산된 낮에 차량 충전을 위해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더 낮은 요율의 금액을 지불하게 된다. 정말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전기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작은 돈 공장을 소유하는 것과 같아진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자동차가 항상 그리드와 연결되어 있도록 하는 것뿐이며, 나머지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이것은 태양광 지붕의 광범위한 설치를 이끌어낸 것과 상당히 유사한 시스템이다.


패러다임 전환: VPP(가상 발전소)


  전기는 사람들이 늘 그것에 찌들어 있도록 유도하며 콘센트에서 먼 곳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속박한다. 콘센트가 사용하기 불편한 곳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 움직인다. 보통 사람들이 인프라에 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덜 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프라의 존재감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드가 큰 말썽 없이 작동하기를 바라며, 그 효과가 파괴적이기 않기를 바라고, 큰 개입 없이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전기를 계속 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하면서도 전기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보존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하며, 이는 에너지 시스템의 전기 생산방식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에너지 효율을 증강하는 비책 2가지는 첫째, 건물, 기기를 설계하고 실제로 제작할 때, 에너지 소비를 큰 노력 없이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 둘째, 우리가 사용하는 그리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가상 발전소(VPP)는 가상의 전력을 만들어내는 시설이 아니라, 전력을 소비하는 모든 기기를 연결해 이 기기들이 발전소와 같은 방식으로 가동되도록 만드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그리드란 곧 거대 발전소를 보유한 대규모 사업자들의 소유물이라고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전력을 생산하고 절약하며, 균형을 맞춰 배분하고 전력량을 계량하며,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모든 이가 하나의 공통 시스템, 즉 그리드로 묶여 있다고 보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것은 바로 지금 그리드를 통제하며 소유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권력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방식으로 커다란 비전, 기막힌 발명 그리고 대중성을 모두 갖춘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생산: 신재생, 원자력, 화석연료로 다변화, 송전: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자유로이 저장-이동, 배전: 가상 발전소(VPP) 플랫폼을 활용한 스마트 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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