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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실험은 늘 하층계급의 몫

미키7

by Book끄적쟁이

이 문서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의 스포일러를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봉준호의 미키17 개봉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원작인 미키7을 읽었다. '7과 17 사이에 얼마나 많은 미키의 죽음과 고통이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을 남긴 채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본다. 설국열차의 경우처럼, 봉감독은 작품의 모티브만 가져와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창작하는 연출가이니, 관람 예정인 분들도 스포 걱정 없이 읽으셔도 될듯. 아예 모르고 감상하실 분들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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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은 문명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차별과 착취의 피를 윤활유로 채워 돌아간다는 냉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미키 반스라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의 숨 막히는 여정을 따라가며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기보다 못한' 존재를 밟고 올라서는지 깨달았다. 노예의 땀, 흑인의 울부짖음, 여성의 억눌린 목소리, 아이들의 찢어진 손, 장애인의 외면당한 삶, 이 모든 것이 문명의 계단을 쌓아 올린 재료였다. 그리고 이제 우주 시대에 접어든 인류는 복제인간과 로봇을 그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마치 거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새로운 실험은 늘 하층계급의 몫이야.


미키의 삶은 죽음과 재생의 끝없는 회전목마다.


'훈련은 100% 어떻게 죽을지에 집중되어 있다. 살아남는 법을 훈련받은 적은 없었다'


이 구절은 그가 얼마나 철저히 소모품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불태워지고, 으스러지고, 증발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불멸? 그건 영광이 아니라 저주다.


여기에 중복된 미키의 등장은 이 저주의 정점을 찍는다. 유니언에서 여러 명의 익스펜더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엄청난 금기사항이다. 게다가 충분치 않은 식량은 중복된 그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둘 다 죽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2에서 7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 미키는 익스펜더블 훈련을 시킨 젬마가 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라는 말에 위로 받으며 버텼다. 어차피 인간의 몸 속 세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걸로 교체되는데, 익스펜더블이 재생 탱크에서 나오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천천히 진행될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셈이란 말에 수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미키는 깨닫게 된다. 나는 죽는다.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나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니다.


이 책은 차가운 우주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이야기다. 문명이 진보하려면 누군가의 피와 뼈가 필요하다는 진실을, 미키의 찢기고 재생되는 몸으로 보여준다. 그는 익스펜더블이 되기로 자청했다고 말하지만, 그 선택은 미드가르드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모두 문명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미키처럼 소모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데이터를 충분히 얻기 전까지는
절대 당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예요.


젬마가 내뱉는 이 대사는 문명이 개인을 어떻게 끝까지 쥐어짜는지 보여주는 섬뜩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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