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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Mar 03. 2023

누구나 어리고 젊었던 적이 있었고 누구나 늙는다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9. 고통의 비밀, 나이듦에 관하여  2부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9. 고통의 비밀, 나이듦에 관하여 2부

(연관성이 있는 2권 이상의 책을 엮어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커버사진 출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먼저 읽으면 좋은 글]

뇌 허락 없인 치유 못해!

씨줄과 날줄, 사유의 확장 19. 고통의 비밀, 나이듦에 관하여 1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위의 그림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세로축에는 무엇이 들어갈까?

.

.

.

.

.

뭐든지



시듦, 쇠퇴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노인'이라는 단어. 단 2음절 속에 사람들이 혐오하는 온갖 부정적 이미지를 집대성해 놓은 듯하다. 아니,  오히려 '틀딱, 연금충, 할매미'까지 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세까지만 해도 노년기는 인생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속적인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국민 정서 역시 날카롭게 변했다. 체력과 식욕이 넘쳐나는 청춘이 행복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에 따라 유년기의 특정 구간과 성년기는 부각되는 반면 노년기에 대한 관심은 대폭 축소되었다. 생산성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라떼는 말이야'만 되풀이하며 새로운 시대에 옛날에 하던 방식을 되풀이하는 구식 세대. 거기에 최근 노인의 수가 점점 늘면서 사회는 그들을 향해 더욱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숫자가 늘어나는 모든 소수집단이 흔히 겪는 일이다. 세상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듯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고 싶은 걸까.


사람은 죽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늙은이가 된다.


연령차별주의

: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형화된 틀에 가두고 차별하는 것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류는 선 긋기를 통해 목숨을 연명해 왔다. 기준이 되는 특성 중에는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손톱만큼도 묵인하지 않으면서 노년층을 무시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편파적 이미지를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겉모습일 것이다. 외모 변화는 아픈 노인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인도 예외가 아니라서.

건강의 개인차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면 '노인'이라는 카테고리로 함께 묶이게 된다. 출처: (왼)선데이 저널, (오)123RF
80대에 접어들면 자신이 이방인임을 실감하게 된다.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찌릿하다. 젊은이의 시선과 눈이 마주쳤는데 나를 머리나 촉수 따위가 한두 개가 더 달린 녹색 피부의 외계인 보듯 한다. 그럴 때 잠깐 잊고 있었던 진실이 나를 엄습한다. 바로 내가 늙은이라는 것. 나이 든 사람을 보면 혹자는 냉담하고 혹자는 친절하다. 어쨌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느 쪽이든 매한가지다. 우리는 자연의 시계와 사회의 가르침 양쪽에 모두 동시에 순응하며 나이를 먹어 간다.


노화는 미움받는 의붓자식


이쯤에서 노인 A씨(75세)의 푸념을 들어보자.


"내가 사정이 있어 단독주택에 사는데, 일흔 너머까지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지은 것 같아. 무릎이 성치 않은 사람은 집안에서 이동하는 것도 힘들게 해 놨어. 뭐 자식 놈이 알아본 요양원도 겉만 번지르했지 가보니 감옥이나 병원과 다를 바 없더군. 냉큼 뛰쳐나왔지."


"얼마 전에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했을 땐 정말 죽을 뻔했지. 필요 없다고 백신도 안 맞았는데 턱 걸려버렸지 뭐야. 이제 면역력이 떨어질 나인게지. 의사 선생이 다 나을 때까지 계속 입원해야 된다고 해서 안 그래도 없던 기력이 더 없어졌네 그려."


(옆에 있던 약병을 가리키며)


"온 김에 이 약병 좀 열어줄 수 있겠나? '어린이 보호용 뚜껑'이라는 데 내 힘으론 도저히 안 열려. 나 같은 건 이제 어른도 아닌 거지.(한숨) 말하기 뭐 하지만 늙었다고 성별이 없어진 건 아니야. 불능인 안쓰러운 노인네 아니면 성욕 주체 못 하는 주책바가지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이래 봬도 아직 어엿한 남자라고!"


(깊은 기침)


"병원에 있을 때, 독한 약을 어찌나 써댔던지 아직도 뭘 먹으면 속이 부대껴. 10년은 더 늙은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보조기구와 도우미 신청도 좀 도와주게. 나 혼자선 도저히 생활이 힘들 것 같네. 아무튼 고마우이."


혁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과학 기술은 인간 수명을 거의 두 배로 연장했지만 그만큼 사회가 돌봐야 할 생존자의 수도 몇 갑절로 늘어났다.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세상에서 인간 수명만 홀로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체계가 만성질환자와 노인 환자를 비중 있게 고려하지 않다니 교육제도가 어린이를 문전박대하는 것과 다를게 무언가.


은색주의, 예방의학, 돌봄의료 


어떤 사회문제든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고령화는 저출생 문제보다 우선한다.

힘없는 다수 인간 집단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관심과 재정 지원, 존중, 보살핌을 순순히 제공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이 연루된 전국적 재난이 터지거나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전에는 말이다.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사회, 의료 시스템)를 만들어야 할 시기이다. 핵심은 은색주의, 예방, 돌봄이다.

은색주의: 병원 건물의 쉽고 안전한 접근성. 즉, 노인 환자가 오래 걷지 않아도 되고 문을 여는 데 많은 힘이 들지 않아야 한다.

예방의학: 치료에 재정과 인력 대부분을 들이붓지만, 실은 치료보다 예방이 경제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훨씬 나은 전략이다. 애초에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올 일이 없다.

돌봄의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치료부터 하자고 달려들지 않는다. 과소치료(청년에 비해 효과가 작은 노인은 치료에서 후순위)는 나이를 차별의 기준으로 삼고, 과잉치료(20대와 60대에게 동일한 약 처방)는 나이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한다. 완치보다 점진적 일상회복을 우선해야 한다.


노인에서 다시 어르신으로


만 65세.

연금수급이 시작되는 나이이자, 공식적으로 '노인'임을 인정받는 나이이다. 그런데 40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은퇴해 30년이 넘는 시간을 놀기만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의 '노인'은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다. 넘쳐나는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사회 참여와 소득원 확보'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간 행복의 핵심 요소가 아니겠는가. 직종을 바꾸거나 근무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높고 몸도 더 건강하다. 


만약 노인이 다시 '생산가능인구'로 복귀하면 '연급수급시기'를 늦추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면 청년, 중년층의 세금부담도 줄어들게 되고, 장밋빛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출생률도 올라갈 것이다.


65세에 들어서는 인생의 3 번째 무대는 우리 일생 중 가장 길고 최고로 드라마틱한 시기이다. 이 무대의 주인공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작지만 중요한 일이다. 산업화 시대 '노인'이라는 부정적 이름표를 제거하고 근대 이전, 존경의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돌려드리자. 이 제안은 비단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확실히 늙게 될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3부에서 계속...)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오직 세월만이 줄 수 있는 참된 지혜가 있다.
그런 지혜는 세상을 오래 살아 인간, 사물, 세상사와
그 이치를 꿰뚫는 안목을 갖게 된 노인에게만 허락된다. - G. 스탠리 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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