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다른 현실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 마음은 솔직히 들떠 있었다.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더 가까워지고, 집안일까지 여유 있게 해내는 ‘괜찮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생각보다 괜찮겠지.’ 어쩌면 나는 육아를 조금 쉽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전, 아이가 내 품에 안기면 어색한지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비었다. 아빠라는 이름이 아직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가까워지면 되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9월을 맞았다. 아이는 1월생, 생후 8개월. 육아휴직 첫날, 아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가자 집 안에는 나와 아이만 남았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 “이제 당신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이 아직도 또렷하다.
처음 몇 시간은 괜찮았다.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주고, 울면 안아 달래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켰다. 젖병을 씻어 말리며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나, 꽤 잘하고 있는 거 아냐?’
하지만 그 자신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나는 이유를 몰랐다.
말을 못 하니 내가 맞혀야 했다. 기저귀인가, 배가 고픈가, 졸린가, 어디 아픈가. 하나씩 확인했지만 정답을 찾지 못할 때마다 울음은 더 커졌다.
집 안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아마 아이도 낯설었을 것이다. 엄마의 익숙한 손길 대신 어딘가 어설픈 아빠의 손. 혹시 내 손이 거칠었을까, 안는 자세가 불안했을까.
아이가 울면 나는 매뉴얼처럼 움직였다.
기저귀. 배변. 배고픔. 옷의 불편함.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이 순서대로 점검했지만, 답을 찾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 과정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했다. 체감상 스무 번은 운 것 같다.
정신이 닳아갔다. 그리고 결국, 화가 났다.
화를 내는 건 너무 쉬웠다.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아이가 놀라 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눈빛이, 어릴 적 나의 눈빛과 겹쳐 보였다.
우리는 “하지 마라”, “왜 또 그랬냐”, “똑바로 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잘못하면 혼났고, 때로는 맞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늘 무서웠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표정을 아이에게 만들고 있었다.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내 기준을 들이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화가 올라오면 잠깐 숨을 고르려 노력했다. 달래고, 안아주고, 얼굴을 보여주고, 둥가둥가하며 눈을 맞췄다.
정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안정감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이었다. 조금 자고 일어나 분유를 먹이고, 다시 조금 자고 또 깨고.
나는 한 번에 7~8시간 자는 게 당연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2~3시간씩 쪼개진 잠은 몸을 전혀 쉬게 해주지 않았다. 머리는 늘 안개 낀 듯 멍했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겨우 잠들면 새벽 울음에 깨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나면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 총 수면 4시간. 그것도 나눠 잔 잠.
그때는 왜 그렇게 서럽던지.
문득 육아휴직 전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남편들은 이렇게 힘들게 돈 버는데, 아내들은 백화점에서 놀고 있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마음 한편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육아는 ‘집에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하루 종일 감정을 소모하는 노동이었고, 한 사람의 생존을 책임지는 일상이었다.
집안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끝났다. 설거지는 쌓였고, 집은 어지러웠다.
그제야 알았다. 보이지 않던 노동의 무게를.
그리고 아내가 왜 “언제 와?”라고 물었는지, 그 질문 속에 얼마나 간절함이 담겨 있었는지.
혹시 이 글을 읽는 남편이 있다면, 아직 혼자 아이를 돌보는 하루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오늘 퇴근 후, 말없이 설거지를 해보길 바란다.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