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집을 나서기로 했다

답답함과 설렘 사이에서 시작된 아이와의 첫 나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몸에 익어갈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일, 정해진 출근 시간 없이 아침을 맞는 일,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는 일. 회사에 다닐 때에는 늘 바깥으로 나가 있었는데,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나서는 세상이 갑자기 거실과 주방, 안방과 베란다로 줄어든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의 표정을 더 오래 볼 수 있었고, 분유를 타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가는 일도 하나씩 익숙해졌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구나’ 싶은 작은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익숙함은 어느새 반복이 되었다. 반복은 곧 권태가 되었다. 같은 시간에 아이를 안고, 같은 시간에 분유를 먹이고, 같은 창밖을 바라보고, 같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육아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풍경만큼은 너무 단조로웠다.


그날도 그랬다. 아내는 서면에 있는 스터디카페로 공부하러 나간 날이었다. 집 안에는 나와 아이 둘뿐이었다. 아이는 매트 위에서 엎드렸다 뒤집히고,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아이는 아직 아주 어렸고, 당장 무엇을 보고 싶다거나 어디를 가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매일 같은 천장, 같은 창문, 같은 동네만 보는 게 아이에게도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건 아이보다 내 마음이 먼저 답답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피곤함보다 답답함이었다. 몸은 집 안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 바깥을 향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미처 몰랐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잠깐이라도 어디론가 나가는 일’로 숨을 쉰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 그 당연한 일이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된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은 버스 타고 나가볼까.’

아이에게 들려주려는 말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허락을 구하는 말에 가까웠다.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서면에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내가 공부를 마칠 시간쯤 맞춰 데리러 가면 좋겠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새로운 풍경을 보면 아이도 조금은 덜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무렵 아이는 자동차 보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를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하루에 두 시간 넘게 차 구경을 할 때도 있었다. 작은 눈이 반짝이며 지나가는 버스와 승용차, 오토바이까지 따라가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늘 보던 동네 골목 대신, 더 넓은 곳에 가서 더 많은 차를 보여주면 아이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곧장 몸이 움직였다. 육아에서는 결심이 길어지면 결국 나가지 못한다. 한 번 망설이기 시작하면 ‘굳이 오늘?’ ‘나중에 하지 뭐’ 같은 생각이 줄줄이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빨리 가방을 꺼냈다. 기저귀를 몇 장 챙기고, 물티슈를 넣고, 분유와 물통, 손수건, 유아용 과자까지 빠짐없이 넣었다. 혹시 모르니 여벌 옷도 챙겼다. 작은 가방 하나가 금세 묵직해졌다. 아이 한 명 데리고 나가는 일인데도 꼭 어디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준비를 마친 뒤 아이를 품에 안고 애기띠를 멨다. 아이의 체온이 가슴 쪽으로 전해졌다. 아직 작고 말랑한 몸이 내 몸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집 앞 산책은 여러 번 해봤지만, 버스를 타고 도심까지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는 이제 모든 걸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아이가 울 수도 있고, 배가 고플 수도 있고, 기저귀를 갈아야 할 수도 있었다. 집 안에서는 당연했던 일들이 집 밖에서는 모두 변수였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작은 모험을 떠나는 사람처럼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아이와 둘이서 처음으로 도시 쪽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이 내게 준 것 중 하나는, 이런 사소한 외출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집 앞 골목으로 나서자 2018년의 동네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차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가게 앞 의자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계셨다. 그런데 몇 걸음 떼지 않아 나는 곧 시선을 느꼈다. 한 사람, 두 사람, 지나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내 쪽을 흘끗 쳐다봤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분명히 모두가 한 번씩은 고개를 돌려 보고 있었다.


아빠가 혼자 애기띠를 메고 길을 걷는 풍경이 그때는 아직 낯설었던 모양이다. 요즘처럼 흔한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 자체를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예전보다 드물어졌던 때였다. 아이가 귀해서 쳐다보는 걸 수도 있었고, 남자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게 낯설어서였을 수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시선을 받는 쪽의 마음은 일단 쪼그라들었다. 괜히 발걸음이 어색해졌다.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내가 눈에 띄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거리도 그날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이는 내 품 안에서 얌전히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혹시 울지나 않을까,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까, 타자마자 사람이 너무 많지는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정류장에 섰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몰랐다. 진짜 시작은 버스를 타고 난 뒤부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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