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안고 보니 도시는 다르게 보였다

처음 나선 도심에서, 나는 아기와 함께 머물 곳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큼 긴장했다. 회사 출근할 때는 수도 없이 타던 버스였는데, 아이를 안고 서 있는 그 순간에는 전혀 다른 탈것처럼 느껴졌다.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고,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올렸다. 혹시라도 아이가 놀라지 않게, 혹시라도 중심을 잃지 않게 한 걸음씩 천천히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도 시선은 이어졌다. 아이가 어려서였는지, 아니면 아빠 혼자 데리고 타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몇몇 승객들이 나를 보고 자리를 살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벌어졌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앉으라고 손짓해주신 것이다. “아기 안고 있는데 여기 앉아요.” “이쪽 와요.” 그런 말들이 이어졌다. 순간 고마움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몸이 성한 젊은 남자가 자리를 양보받는 상황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안고 서 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결국 감사히 자리에 앉았다.


그 짧은 친절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육아를 하다 보면 대단한 도움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작은 배려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날 버스에서 자리를 내어주신 분들의 표정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분들에게는 별일 아니었겠지만, 내게는 ‘그래도 세상이 아주 차갑기만 한 건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해준 장면이었다.


창밖으로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네 골목을 벗어나 조금씩 차가 많아지고 건물이 높아졌다. 아이는 내 품 안에서 고개를 돌리며 창밖을 봤다. 커다란 버스, 줄지어 선 택시, 신호등 앞에 멈춘 자동차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계속 지나갔다. 나는 괜히 흐뭇해졌다. ‘그래, 나오길 잘했네’ 싶었다.


그렇게 서면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날 외출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부산 한복판의 번화한 거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가, 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도로. 동네와는 전혀 다른 밀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도 새로운 자극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오랜만에 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으니 왠지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번화가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카페에라도 잠깐 들어갈까 했다. 그런데 곧 생각이 멈췄다. 아이가 갑자기 울면 어떻게 하지? 기저귀를 갈아야 하면? 분유를 먹여야 하면? 잠깐이라도 눕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머릿속에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카페는 다른 사람들이 쉬고 먹는 공간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는 있어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필요한 동작들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제야 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도시에는 어른이 머물 공간은 많지만, 아기와 함께 머물 공간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기와 외출할 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기저귀다. 아기는 예고 없이 배변을 한다. 그리고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이를 안전하게 눕힐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번화가 한복판에서 그런 공간을 찾으려 하면 놀라울 만큼 없다. 화장실은 있어도 아이를 눕힐 수 있는 곳은 없고, 벤치는 있어도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니고, 카페는 있어도 다른 손님들 눈치를 보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필요인데, 정작 도시는 그 당연한 필요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그런 시설이 있는 곳은 대형마트나 백화점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기저귀 교환대나 수유실이 주로 여자 화장실 쪽에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은 그마저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몸으로 깨달았다. 세상이 아직도 육아를 ‘엄마가 하는 일’로 상정하고 있다는 걸, 말이 아니라 구조로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괜히 걸음이 빨라졌다. 마음속에 조급함이 생겼다. 지금 당장 아이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있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할 곳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평범한 외출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작은 위기들을 품고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크게 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소리에도 주변의 반응이 느껴졌다. 몇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달래야 한다’는 압박감이 확 밀려왔다. 집에서는 그 울음이 별일 아닌 일상인데, 밖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집 안에서는 아이가 울면 달래면 그만이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이 울음소리에 익숙하지 않구나 하고. 물론 누가 일부러 매정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아이를 자주 접하지 못하니, 아이 울음은 더 낯설고 더 크게 들리는지도 몰랐다. 나 역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직접 안고 있는 사람에게 그 시선은 생각보다 크게 꽂힌다. 부모는 이미 충분히 당황하고 있고, 그 상태에서 쏠리는 시선은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든다.


나는 아이를 달래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아이가 진정되면 다시 움직이고, 조금 보채면 멈춰서 달랬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자꾸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기와 함께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도대체 어디에 있지?’

키즈카페라는 선택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제대로 이용하기도 애매했고, 오후 시간대에는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원한 건 특별한 놀이시설이 아니었다. 그냥 잠깐 머물 수 있는 곳,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 아이가 울어도 조금은 덜 눈치 보이는 곳, 그런 평범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노키즈 존이라는 말이 지금보다 더 낯설면서도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업장의 사정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거나, 안전 문제를 걱정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그 문 앞을 지나가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치며 서로를 익히는 과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아이를 더 불편하게 느끼고, 아이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줄어든다. 서로를 피할수록 이해할 기회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 싶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됐다. 그날 서면은 넓고 화려했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나에게는 생각보다 몹시 좁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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