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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Oct 12. 2020

책 <키르케>

by 매들린 밀러

어쩜 아무도 여태껏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진작에 쓰였어야 하는 서사였다. 그리스신화에 수없이 등장하는 남성 영웅들, 남성 신들. 그리고 남성을 함정에 빠지게 하거나 타락하게 하는데에만 쓰여졌던 여자 인간 혹은 님프들. 이 틀에 박힌 역할들에 공평한 시각을 주고자 한 시도가 21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났다니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울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신화는 선사시대부터 항상 그 자리에 있어왔다. 기원전 8세기경 이미 구전으로 존재했고 호메로스가 일부를 문자로 기록한것도 기원전 6세기 즘이다. 삼천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존재해왔던 이야기인데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보려는 시도를 2020년에 와서야 해보았다니. 생각해보면 <키르케>가 나온 것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고, 어떻게보면 이제서야 나타난 것이 늦은 셈이기도 하다. 작가는 물론 천재다. 계속 스스로 마음속으로 소리내어 말해 보며 놀라고 있는데, 삼천년동안 !!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누군가 꺼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이야기로.


티탄족 최고의 신, 태양의 신 헬리오스을 아버지로,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를 외할아버지로 두고 태어난 키르케. 이상하지 않은가. 아버지 다음에 어머니가 와야할 것 같은데 외할아버지가 오는 것이. 키르케의 태생을 설명할 때부터 불편함이 시작된다. 어머니를 설명해야하는데 그를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이 없다. 작가의 말처럼 그저 그런 수천 곱하기 수천의 돌맹이같은 님프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애써 이름 붙이지 않는 존재. 키르케의 어머니를 부르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아버지(오케아노스)를 소환할 수 밖에 없던 과거의 이야기. 그래서 처음엔 키르케도 이름이 없었다. 그냥 님프라고 불렸다.


매들린 밀러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잠깐 등장하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데려온다. 탄생과 동시에 저마다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게 되어 아무것도 노력할 필요가 없는 신들의 세계에서, 키르케는 신부라는 뜻을 가진 님프로서의 소양인 아름다움 조차 갖지 못하고 태어난다. 그렇지만 키르케에게는 (남들이 보기에 과할지 모르는) 소망과 이루고자 하는 의지,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호메로스에 의해  '인간처럼 말하는 무서운 여신'이라고 묘사된 키르케를,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아는 '특별한' 신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신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무엇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으니까. 또, 매들린 밀러는 키르케가 서양문화사에 처음 등장한 '마녀'였지만 남성 영웅을 더 영웅답게 만드는 도구로서만 사용되고 잊혀진데 초점을 맞춘다. 그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기억되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지워지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가 잊혀진 키르케에 숨결을 불어넣어주어서 현대의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


키르케의 서사만 따라가도 너무 재미있지만, 몇 천년 동안 남성의 시선에 갇힌 인물들(키르케, 파시파에, 페넬로페, 메데이아 등)이 제 목소리를 찾아 이야기 하는 걸 듣다 보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까지 든다. 브라보, 혼자 일어나 박수라도 치고 싶다.

키르케가 바다의 괴물이 된 스킬라를 속이기 위해 동생 페르세스로 남장을 하고 싸우는 장면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평생 이렇게 존중 받기는 처음이었다. 페르세스로 지내는 기분이 이런걸까.' 직장 내 회의 석상에서, 택시 안에서, 아이의 부모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조차, 여성으로 살아가며 한 번이라도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아본 사람들은 누구나 끄덕이며 읽었을 것이다. 삼천년 전의 키르케라고 다를까(또 말해버렸다, 삼천년). 고전 속의 키르케 입에서 저 문장이 발화되는 것을 읽을때의 짜릿함이 있다 분명.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 이다혜 기자님은 마녀가 되기 위한 첫번째 주문을 이 한 마디로 꼽았는데 맞는 말이다. 어린 키르케는 이렇게 말하고는 태양신인 아버지의 분노에 살갗에 물집이 잡히고 공기를 빼앗겨 숨도 쉴 수 없어 두려움에 떨었지만, 후에 성장한 그는 아버지의 분노에 이렇게 화답한다.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이 세상 모든 가부장적인 제도 아래 고통 받았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듯해서 속이 시원해진다.


<오디세이아>에서는 키르케가 남자 인간을 돼지로 변신시키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데 책 <키르케>에서는 그 이야기에 서사를 준다. 그리고 그 서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아마 일어난 일일 것이라 짐작 가능하다. '님프들은 신부라고 불렸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식탁 위에 차려진, 아름답고 늘 새롭게 바뀌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데 영 젬병이었다.', '그들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 남자들은 돼지로서 자격 미달이었다.' 고전에서, 자아 인식을 이렇게 정확히 하는 여성 화자를 본 적이 있던가. 그리고 키르케는 이를 무기로 세상에 대항하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키르케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실수를 하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노력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사랑에서도. 그런 점이 인간과 닮았고 많은 사람들이 키르케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르케가 아기를 낳고 키우는 과정, 그리고 그의 내면의 목소리에 나는 그 어떤 현대 문학의 여성 화자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는 햇볕을 질색했다. 바람을 질색했다. 목욕을 질색했다. 옷을 입는 것도, 다 벗는 것도, 엎드려 눕는것도, 똑바로 눕는 것도 질색했다. 이 위대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질색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주문을 개발하고 노래를 부르고 길쌈을 하며 보냈던 그 많은 시간들을 떠올렸다. 팔 한쪽이 떨어져나간 듯한 상실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사내들을 돼지로 변신시켰던 것까지 그리워졌다. 적어도 그건 내가 잘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싶었지만, 대신 그 어둠속을 아이와 함께 걷고 파도 앞을 왔다갔다하며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예전 생활을 그리워했다. 아이가 울부짖으면 밤하늘에 대고 심술맞게 중얼거렸다. "적어도 죽은건 아닌지 걱정할 필요는 없구나." 얼른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저승의 신은 그보다 훨씬 약한 도발에도 찾아왔다. 악을 쓰는 아이의 조그만 얼굴을 내게 댔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고, 머리칼은 엉망이었고, 뺨에 조그맣게 긁힌 상처가 생겼다. 어쩌다 다쳤을까?...평생 동안 나는 비극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 순간의 도래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남들이 과분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소망과 반항심과 능력이 있었고 그건 모두 벼락을 유발할 만한 것이었다. 열몇 번의 상심이 나를 그슬었지만 여태껏 그 불길이 내 살 속까지 태운 적은 없었다. 그 무렵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던 이유는 새로이 확실해진 사실 때문이었다. 신들에게 드디어 나를 협박할 무기가 생긴 것이다.' 어머니에게 모성애는 기본이라고 은근하게 설교하지 않는 고전이라니. 드디어, 기꺼이 제 목숨을 내어줄수 있는 사랑과 한 사람으로서의 (나만 책임지면 되는)자유가 모두 공존하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나타났다니. 고전을 읽으며 이렇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니 모든 문장에서 환호를 부르고 싶어졌다.


이때까지 세상은 '오만하게 굴다가 영웅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마녀, 기가 꺾인 여자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써댔다. <푸른 수염>, <목걸이>, <빨간 구두>, <나비 부인> 등.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워 '벡델 테스트' 같은 것 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어느 시대나 저마다의 천재들과 큰 변동이 있겠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어 <키르케>를 만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키르케>를 읽고 그리스신화를 상상하고 모험할 수 있다는 점도 흥분되게 한다. <키르케>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일까. 사오백만년 전 인류가 출현했고 현대 인간의 호모 사피엔스는 4만년 전에 나타났다. <오디세이아>는 3천년 전 쓰여졌지만, 인류의 발자국과 앞으로의 길을 헤아려보면 <키르케>는 앞으로 3천년 후 고전으로 읽힐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리가 전쟁이든 환경파괴든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는다면). 매들린 밀러가 왜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데려왔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오디세이아와 함께 읽힐 그리스신화는 키르케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신화를 떠올릴 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메들린 밀러의 <키르케> 후대는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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