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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Oct 12. 2020

책 <난처한 클래식>

오늘은 완전히 바흐. 비가 내려, 몇 일 전에 사두고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 아껴두었던 향초를 꺼냈다. 좋아하는 원두로 공들여 커피도 내렸다. 억지로 기분을 내보려고 하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칼세이건의 책 <코스모스>에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행성 탐구를 위해 쏘아올린 탐사선, 보이저1호에는 골든디스크라는 것이 있다. 후에 골든디스크를 발견할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체에게 지구를 소개하기 위한 인류의 문화 유산들이 들어있는데, 이 중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중 한 곡이 들어있다. 보이저1호는 40년이 넘는 탐사 임무를 마치고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 항해하고 있고 동력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칼세이건에 따르면 10억년이 지나도 이 디스크는 우주에 남아있을수 있다. 10억년 후면 지구는 태양에 점점 가까워져 아마 사라지고 없을 때인데 디스크는 남아 인류의 아름다웠던 유산을 누군가에게는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크시대 마지막즈음의 바흐는 그 시대에 통용되던 조율법인 순정률을 대신하여 평균율(조성을 바꾸어도 불협화음이 나지 않는)을 기반으로 한 작품집을 만들어낸다. 그 때의 음악가들은, 순정률만큼 5도 화음의 청량함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평균율의 조율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흐는, 후대의 음악가들이 순정률의 문제를 답습하지 않고 미래에 더 자유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조율법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듯 가장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어냈다. 누가 바흐의 음악을 고리타분한 음악이라고 말했을까.


다니엘 보렌바임이 말했다지.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 하나는 자신의 시대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미래와 영원을 향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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