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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Oct 12. 2020

여자라서의 문제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정하기까지 끝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 있다. '내가 여자라서 그만 둘 수 있는 건가?'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일단 제일 처음 사회가 나에게 갖는 편견일테고 나도 그 질문에 명확한 결론을 짓고 싶었다. 과연 결론적으로 사회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 결정 하자마자 '그래, 남편이 생활비며 가정의 재정을 책임질테고 너는 아이도 봐야하니까 층분히 그만 둘만하지.'라고 단정 지었다. (내 동거인의 수입이나 재정 상황을 아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커리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저 대명제 하나로 모두 덮어졌다. 사람들도 더 이상 나 개인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큰 결정을 했다고 했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좋겠다 이제 놀면 되겠다, 부럽다고 했다. 나는 어려웠다. 12년 넘는 회사 생활을 접는 것이. 그렇게 천직이라 생각하며 다닌 직장도 아니었고, 여느 대기업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어려운 적이 많았다. 그래도 꽤 좋은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일을 할 때도 있고, 그동안 쌓인 나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자산이 되어 조직 내에서 잘 생활 하고 있었다(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거나 가부장적인 문화에 부딪혀 화가 날 때도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은 나의 회사 생활에서 업무적으로 또는 인간관계 측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때라 정말 이렇게 안정적인 직장 생활(연봉, 복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경력 등)을 접는 것이 맞는 건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남편의 외국 주재 생활로 지금처럼 남편, 나, 아기 셋 각자 모두 떨어져서 생활하는 삶이 바람직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나의 커리어를 희생해서 바꾸고 싶지 않다는 건 나에게 명확한 기준이었다. 커리어 전환을 정말 이 때 실행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결정은 내가 여자가 아니어도, 또는 기혼자가 아니어도 실행했을까? 이 질문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나는 회사에 들어와서 하고 싶었던 해외영업일을 하면서도 5년 차 즘에 들어서는 계속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했다. 좀 더 내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일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에너지를 모두 바쳐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고 직장 문화도 맞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예인 가십이나 육아, 부동산 이야기에만 관심 있었고 난 그것들에 다 관심이 있었지만 아델이 박차고 나간 세자르 영화제 얘기도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며 채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편견없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일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하루 종일 얼른 이 시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진짜 인생을 살아야지 (진짜 인생이 있는거라면) 생각하는 시간들이 지긋지긋했다. 이 정도 했으면 되었다는, 아니 이런 단호함은 나에게 없는 것이다,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게는 조용히 자기 일을 사랑하고 가꾸어가는 삶을 꾸리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세밀화가 김소영 님, 펭귄학자 김원영 님,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님, 루즈 긴즈버그, 타샤 튜더 끝도 없다..  지금 직장에서 그런 삶을 꿈꿀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 아니던가,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것. 철없는 결정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한편은 철없는 삶인지 아닌지 그런 평가, 판단하는 시선들 그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좆까 하는 심정이 되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서, 책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가 언급했던 '무의미와 혼란, 착란과 꿈의 맛'이 정말 실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때는 안주하고 싶었고, 어떤 때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래서 뭐?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허무에 빠졌다.


주변 선배들의 조언대로 한국에서, 대기업에서, 여자로 여기까지 와놓고(이 모든게 대단한건 아니다. 다른 모든 일처럼.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고달픈 일이 아니던가.), 이제 시대가 바뀌어 조금만 더 있으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도 있고 팀장, 임원도 될 수 있을텐데 이때까지 어려운 건 다 버텨놓고 이제와 왜 그만두려 하느냐,는 말이 내 안에서도 들려왔다. 나중에 동료들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그래서, 막상 가족과 다 함께 살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도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12년이나 한 직장 생활인데 정말 안 맞았다면 못 하지 않았을까, 난 사실은 직장인의 삶이 가장 잘 맞는 인간이 아닐까.. 결국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닫게 될까봐 그래서 후회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렇지만 또 한편 든 생각은, 난 정말 어쩌면 참을성이 강해서 뭘 하든 잘 참는 스타일인거 같기도 한데(그냥 한국의 평범한 모범생) 그래서 지금까지 잘(?) 참아온 삶인거고 더 맞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 그리고 뭐든 해봐야 알지 않겠나, 지금 도전 못 하면 난 평생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린 것 같다. (결론을 내렸다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지금도 무서우니깐..)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쁘지않은 직장 생활을 해왔으니까. 그러면.. 얼른 돌아가면 된다, 고 계속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서 요지는 나는 나 개인으로서 이런 결정에 이른 것인데, 사람들은 내가 그냥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서 편한 결정을 내렸다고 마음대로 단정한다. 얼마 전엔 회사에서 2020년 목표 수립을 작성해야했는데(퇴직 전에 수립 확정이라 나도 세우긴 해야했다) 남자 후배가 '뭘 열심히 고민하세요. 그냥 육아로 쓰세요.'라는 한 마디에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그 남자 후배는 그냥 착한 아이였다... 그럴때마다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럴수도 없고, 무엇을 위해? 하는 심정이 된다. 내가 남자였다면, 또는 미혼 여성이었다면 직장을 그만 둘 때 다른 follow-up 질문들이 있었겠지. 여성, 특히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이라는 건 참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복잡한 심경 가운데 버지니아 울프, 메리 올리버, 그레타 거윅, 그리고 주변의 조용히 하지만 단단히 자기 삶을 꾸려가는 여성 들의 글(주로 트위터)은 힘이 된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작은 아씨들>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JO

Who will be interested in a story of domestic struggles and joys? It doesn't have any real importance.


누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관심이 있겠어? 그런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Amy

Maybe we don't see those things as important because people don't write about them

음, 사람들이 글로 쓰지 않으니까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게 아닐까?


Jo

No writing doesn't confer importance, it reflects it.

아니, 글 자체가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지 않아. 삶에 이미 있는 것을 반영하는 거지.


Amy

I'm not sure. Perhaps writing will make them more important.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아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글을 쓰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지.


맞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쓰여지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에게든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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