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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rce Oct 12. 2020

도서관

학생이던 때 시험이 끝나고나면 언제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래서인가, 6월의 초록이 가득한 창이 있는 도서관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도서관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열을 따라 늘어선 책장, 빼곡이 꽂힌 책들, 그리고 책장 행열의 끝에는 창문 너머로 초록을 띈 나무들이 있다. 열심히 공부한 모범생도 아니었건만, 이삼일 벼락치기를 하느라 보고 싶은 책을 보지 못하고나면 욕구불만이 가득해졌다. 읽고 싶은 책을 찾으면 언제나 내가 찾길 기다렸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있는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은 나에게 보물이 숨겨진 놀이 공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은 언제나 친근한 곳이었지만, 대학때처럼 삶에 가까운 적은 없었다. 학과 건물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책을 빌리러 가는 수고를 굳이 따로 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보고 싶은 책을 찾으러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나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내 몸 안에 담으려는 것처럼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천장에 있는 책부터 바닥에 있는 책까지 훑었고 읽고 싶은 책들을 고심하여 골라낸다. 어떤 날은 로마인 이야기가 읽고 싶었고 어떤 날은 안나 까레니나가 읽고 싶었다. 읽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그 곳에 있었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이 이렇게 많아 신나는 한편, 평생 읽어도 이미 나온 좋은 이야기들을 다 읽지 못할 거 같은 예감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제목을 훑으며 아, 이런 책도 있네, 이 책 재밌겠다, 생각하며 책의 정원을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렇지만 시험이 끝난 후 찾는 도서관은 산책이라기보다는 먹이를 찾아 허겁지겁 돌아다니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사나운 걸음에 가깝다. 가장 재미 없는 시간을 보냈으니 지금부터는 가장 기쁨이 되어줄 책을 골라내겠다 하는 마음이었으려나.


지금은 책을 주로 사서 보는 편이라 도서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가끔 들르는 다니던 대학의 도서관에서 매번 슬퍼지고 만다. 스무 살 무렵의 학생들이 도서관에 있는 모습을 마주치면 마치 6월 파릇하게 돋아나는 여린 연두빛의 새 잎처럼 그 무한한 가능성에 부러운 한 편, 아주 솔직히는 먹고 사는 일들로 세상과 타협하며 싱그러움을 잃어갈 미래에 내가 대체 뭐라고 아쉬워진다.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울고 싶어 진다. 그 괴로운 마음이 너무 커서 이 곳에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어, 이 불안정한 마음의 근원을 생각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일까, 다시는 오지 않을 찬란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 이렇게 모든게 결국 시들어가는데 의미 있는 삶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따위의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수만권 책 사이에 들어서면 가끔 거대한 시공간, 우주에 들어와 서 있다는 생각을 한다. 수천년, 수백년동안 인간이 남긴 생각, 이야기들 속에 있는 것이니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넓은 우주 한가운데 작고 어린 인간을 마주하면 슬퍼지는 것이.


그렇지만 책만 있어도 아마 나는 평생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가끔 책이,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처럼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독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도 나와 같은 즐거움과 불행을 느낀 사람들의 글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받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생각한다. 가끔은, 아름다움을 생산할 능력은 없고 소비만 할 줄 아는 삶이 서글퍼지는 때도 있으나, 일찍이, 그리고 지금도 감탄할만한 작가들이 수도 없어 그들이 내어주는 작품을 느낄 수 있는 삶만 된 것도 감사하지 않은가, 위안 삼는다. 오늘도 그들의 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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