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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책 읽기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멋진 신세계는 없다

by 카이저 소제

공상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1970년대 동화책으로 처음 읽었다.

술에 취해 갈지자걸음으로 집에 들어오던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책 꾸러미.

<에스에프동화 전집 10권>.

에스에프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책이 너무 재밌어서 기나긴 겨울방학 내내 끼고 살았다.


공상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설과 영화와 동화는 넘쳐난다.

소설과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에서도 등장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바둑 대결을 하고, 입꼬리가 늘 웃고 있는 인공지능 여성이 티브이쇼에 나와서 인간을 지배할 준비가 되었다는 농담도 한다. 인공지능의 역습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터리만 끄면 된다는 해결책도 있다.


1932년에 나온 <멋진 신세계>.

충분히 익숙한 내용이라 신선하지는 않다.

작위적인 설정이 더러 식상하고 유치하기도 하다.

근데 작위적이며 식상한 상황들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철학적 종교적 고민이 흥미로웠다.


<멋진 신세계>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사회기도 하다.

엘리트가 지배하는 철저한 계급사회, 계급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화 교육,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도구화.

이것은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사회의 모습이며 플라톤이 이상향의 모델로 삼았던 스파르타의 모습이기도 하다. 플라톤식 이상향은 이후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 국가, 소비에트라는 공산국가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멋진 신세계로 명명된 유토피아 안에서는 인간의 감정이 통제된다.

감정이 욕망을 잉태하고 해결되지 않은 욕망이 개인의 불행과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이 통제되는 유토피아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수면교육 등등 온갖 의식화 교육을 통해서도 결코 잠재워지지 않는 인간종으로써의 이성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 여기 어디? 난 누구? >라고 묻기 시작하면, 그 멜랑꼴리 한 감정을 단지 불행의 단초로 여긴 인간 개체들은 <소마>라는 약을 빤다.

시험관 안에서 대량생산된 노동자 계급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받게 될 알약 몇 알을 위해 기꺼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의 노동을 감수한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알고 있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하면 소마를 먹으면 된다. 아니면 먹이든지.

근데..공상과학소설 속 미래사회로 그려진 멋진 신세계는 규모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내가 사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엘리트가 떠들어 댄 적이 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필요 없는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며 행복했던 것도 잠시...그들 자식들이 따박따박 알파 플러스 계급에 진입하기 위해 인맥의 카르텔로 사다리를 쌓아 올리는 꼴을 보고야 말았다.

계급상승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는 자기 길을 터기 위해서는 남의 사다리를 걷어차야한다. 대학입시가 계급투쟁의 전장이 되고 있는 사회를 몸소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 계급질서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더욱 공고해지고 철통보안된 계급질서, 대중 매체를 통해 가짜 이미지를 퍼뜨리고 사람들의 의식을 좀먹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만약 선택의 귀로에서..

1. 감정을 통제받고 고통 없는 사회와

2. 감정을 맘껏 누리고 고통을 감내할 사회.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고민스러울 듯싶다.

후자를 선뜻 선택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던 듯싶기도 하고 세상이 좀 무섭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영화 <가타카>는 과학이 인간의 운명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무서운 신천지를 펼쳐 보인다. 우수한 유전자를 골라골라 인공배양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나는 시대.

이런 첨단출산시대에 부부간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그래서 열등인간의 낙인이 찍힌 주인공 빈센트는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났다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예상 수명 30세>의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빈센트가 모지란 지능과 체력과 어딘가 잠복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어지는 유전적 결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대충 살았을까?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절어 <대체 날 왜 낳았냐고~> 신세한탄 오지게 하면서 부모 가슴에 못질하고 살았을까?

절대 아니다.

우리의 빈세트는 과학이 어둡게 밝혀준 자신의 운명에 맞서 고통스러운 노력을 하고, 마침내 우성인간의 대열에 합류하는 인간승리를 이루게 된다. 감동적인 해피엔딩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유전자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툭! 던지면서 이 영화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감동적인 인간승리의 리얼리즘 영화로 변신한다.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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