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무섭나 ?
모닝콜을 아침 6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두 개의 알람이 동시에 울리고 둘이 동시에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우려다 악 ! 비명을 질렀다.
등 쪽 어딘가가 아프다.
엉거주춤 앉아서 옷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서있거나 걸어도 괜찮고 만져서 아픈 곳도 없다. 근데 몸을 앞으로 숙일 수가 없다.
양치질할 때가 제일 고역이었다. 꼿꼿이 선 채로 입을 헹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게 바로 어른들만 걸리거나 결리는 '담'인가 싶다.
처음 겪는 원인 불명의 통증.
통증이 원인 불명이니 원인 불명의 자연치유를 바라야지.
사실 어제 아침에는 잇몸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뾰루지 때문에 놀랐었다. 음식물이 낀 줄 알고 빡빡 칫솔질을 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물감.
근심을 잔뜩 안겼던 단단하고 볼록한 뾰루지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도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은연중에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프다는 얘기는 딸한테는 함구했다. 공연히 걱정만 끼치고 지청구만 들을 텐데.
나타와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8시도 안 되어서 숙소를 나섰다.
거리는 비 온 흔적으로 가득하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늘은 도루 강변과 히베이라 광장 쪽을 두루 돌아볼 계획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도루강 위에 있는 동 루이스 다리.
구글 지도를 길잡이 삼아 찾아가는데 상 벤투 기차역을 또 지나친다.
포르투에서는 상 벤투 기차역을 기준으로 움직이면 된다는 깜냥이 생긴다.
기차역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 지만 정하면 된다.
시가지 쪽으로 갈지, 도루 강변으로 갈지, 아니면 기차 타고 근교로 갈지.
기차역에서 도루강으로 가는 길은 호젓하고 평화로웠다.
하늘과 맞닿은 언덕을 향하는 넓고 완만한 오르막길.
새파란 하늘이 한가득 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멋지다.
언덕을 오르니 갈매기떼가 넓은 길을 점령하고 있다.
가까이 가도 동요하지 않는 갈매기떼.
안 비켜주면 어쩌나 주춤거리고 있는데 무리 지어 앉아있던 갈매기들이 갑자기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크게 원을 그리며 까마득히 날아오르는 은빛 갈매기들.
장관이다.
리스본과 포르투의 묘한 공통점, 눈앞에 바다가 보이지 않음에도 어디에나 갈매기가 있다.
갈매기 무리를 지나니 동 루이스 다리가 길게 뻗어있다.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는 다리.
에펠 탑을 옆으로 눕혀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에펠 탑을 닮았지만 사실 에펠탑보다 먼저 만들어진 다리다.
앙상하고 차가운 철교라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건 취향 차이기도 하다.
삭막하고 거대한 철교인 동 루이스 다리보다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처럼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목조다리가 더 좋은 것, 바로 내 취향.
다리는 1층과 2층으로 되어있다.
상벤투 기차역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서 만나는 다리는 2층이다.
말이 2층이지 높이가 어마아마하다.
높이 44.6m.
대략 아파트 16층 높이쯤.
아침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나가긴 한다.
다리 입구에 서서 눈에 담기는 풍경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가히 장관이다.
책에서 봤던 '긴다이스 푸니쿨라'도 보인다. 가파른 벼랑을 따라 장난감처럼 쌩~내려오는 것이 앙증맞다.
경치를 보며 감탄했던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 다리를 건너는 짧지 않은 시간은 힘들었다.
탁 트인 아찔한 높이감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포항에 있는 스카이 워크도 잘 걸어 다니는 딸은 감탄사 연발이다. 폭이 넓은 다리를 이쪽저쪽 가로질러 다니며 사진을 찍기 바쁘다.
까마득한 다리 아래 도루강에는 이른 아침부터 카누를 타거나 조정경기 하듯 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리 위에서는 조깅을 하고 다리 아래에서는 노 젓는 사람들.
포르투의 토요일 아침 풍경은 평화로웠다.
" 이런 풍경을 보면서 조깅을 한단 말이지!"
딸의 부러움 가득한 감탄사에도 대꾸할 여유가 없다.
너무 무섭다.
폰을 끼운 짐벌을 든 채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그냥 걸었다.
뭐가 찍히든 상관없다.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이 다리도 끝은 있다고 주문을 외며.
그때 딸랑딸랑 청명한 종소리가 울리고 철커덩 씩씩 대며 전철이 다가온다.
인도와 철도를 구분하는 난간이나 높낮이가 없는 다리 가운데로 씩씩대며 오가는 기다란 전철.
소음과 진동으로 다리가 흔들린다.
내 다리도 흔들린다.
가만히 서서 발을 내려다보고 서 있자니 철 구조물 벌어진 틈 아래로 시퍼런 강물이 보인다.
아, 눈물 나. 식겁할 지경이다.
그 와중에 내 옆으로 조깅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다잡았다.
익숙하지 않아서 무서울 뿐이라고. 절대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다리를 건너는 동안 전철을 한 두 번 더 만났다.
맞은편 다리가 끝나는 지점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단단한 땅에 발을 디뎠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뎠을 때도 이만큼 안도하며 기뻤을까 싶다.
시간차를 두고 뒤따라온 딸이 말했다.
"얼굴이 너무 창백하네."
동루이스 다리 2층을 건너서 만나는 곳은 바로 '모루정원'이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일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우리는 아침 9시도 되지 않아서 도착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단단한 땅에 발 붙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편안했으니.
이 때는 몰랐다.
이 날 동 루이스 다리 2층을 한 번 더 지나게 될 줄은.
그것도 어두운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