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세상에 리얼리티를 더하고 단련된 생각의 깊이를 확장하는 것
얼마 전 <민스미트 작전>과 <신비한 동물 사전과 덤블도어의 비밀>이라는 영화 두 편을 보고 왔다.
사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연달아 보는 것은 깊은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
더구나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영화와 전쟁 중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니...
하지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다른 분야의 책을 번갈아 읽더라도 특별한 인사이트가 번뜩이듯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펼치는 판타지의 세계는 나의 현실보다 흥미진진하고 아름답다. 나는 그곳에 초대되어 작가가 선물처럼 부려 놓은 신비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액션에 매료되어 완전히 빠져든다.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더 많은 비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극적인 해피 엔딩에 아쉬워한다.
그런데 이번 <민스미트 작전>에서는 판타지보다 더 쫄깃한 스토리 속의 스토리가 나를 사로잡았다.
영국의 정보부에서 가상의 스파이를 실제 존재했던 것처럼 조작해서 완벽하게 적을 속였던, 역사상 최고의 기만 전술을 활용한 비밀작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나치에 대항하는 유럽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상 인물의 가족과 살았던 흔적, 우정과 사랑, 연애편지, 애인의 사진과 학교, 취미 등을 실재 인물의 인생처럼 보이게 하려고 갖가지 세세한 설정을 하고 증거를 만들었다.
바로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 복잡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네 명의 남녀는 몰입하기 위해 상상력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바라는 이상형을 대입하면서 감정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재미있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 각자의 꿈과 희망, 숨겨둔 마음을 흔들어 보이고 원하는 것을 드러내면서 점점 가상 인물의 존재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정말 나인 것처럼,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생각하며 코밑까지 다가온 전쟁의 위험에도 상상하는 동안만은 잠시나마 서로에게 사랑의 온기를 나누고 그리운 추억의 한 페이지 위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작전은 역사에 남을 성공적인 비밀작전으로 평가받게 된다.
더구나 작가가 자기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자식을 대하는 것과 다름없듯이, 그들도 그렇게 공들여 상상해낸 가상 인물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나중엔 그의 죽음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
죽은 이를 되살려 위기에 빠진 유럽의 운명을 구하는 동안 우리의 영웅들은 어쩌면 마법사와 드래건이 울부짖는 세계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강력한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이 통제되거나 사라진다면 각자의 고단한 인생이나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 상상의 세계는 나를 내려놓고 쉬는 안식처일 수도 있고, 사방으로 막힌 감옥에서도 탈출을 계획할 수 있는 밀실이며, 답이 없는 현실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자신을 살리는 불빛을 만날 수 있는 숨겨진 우주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불이 켜진 영화관을 나서며 나도 이처럼 치열하게 상상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가 만든 허구의 세상에 성실한 리얼리티를 아낌없이 더하고 거기에 단련된 생각의 깊이를 확장하는 것은 또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불가능하다고 헛소리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꿈꾸는 세상에 매일 실어 나르는 땀방울과 진한 눈물로 키운 시간이 모여 바다처럼 채울 그날을 나는 상상한다.
그리고 눈앞의 꿈들이 그려내는 미래로 건너가 미리 기쁨의 꽃다발을 나의 성전에 두고 온다.
언젠가 시작된 꿈들을 살아있는 내 걸음으로 이루고 그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을 때까지 더욱 열렬히 상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