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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책향기마을
Dec 13. 2022
사랑의 등을 켜고
러브 레터
하루를 한 달처럼 보내는 요즘,
문득 30년 전을 떠올리면 까마득한 옛이야기 같아서 이게 내게 일어난 일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지.
그래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바로 당신과 나의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날이니까.
그 당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나는 마음 붙일 동료를 찾느라 회사 사람들 면면이 훑어가며 살펴보고 있었지. 지루하고 따분하고 흥미로운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거든.
그날 오후에도 여전히 탐색모드로 일하면서 틈틈이 사람들의 대화를 분석하며 나름대로 분류를 하고 있었지.
이건 내가 혼자 하는 놀이 같은 거야. 분류하고 맞게 대응한다. 이게 내가 상처받지 않고 사는 방법 중 하나지.
특히 신입은 몸도 낮추고 전체 상황을 파악해야 편하니까.
지금 우리 아이들 같으면 이러겠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파악이 끝난 전 직원의 분류를 끝내고 나는 한숨을 쉬었지.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일이나 하자. 그러다 직원 명단 중에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의 이름을 발견했어. 왠지 친근하고 궁금하고 반짝거리는 것 같아 수그러들었던 호기심이 부풀어서 기다리지 못하고 똘아이 상사에게 물었지.
-이 사람 어디 갔어요?
똘아이 상사가 우물거리며 내게 말하려는 순간 바로 그때 당신이 현관을 지나 우리에게 다가왔어.
그날 당신은 며칠 씻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상태였지.
현장을 마무리하고 들어온 당신은 지친 모습이었지만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 인사했어.
- 얼마 전 새로 들어오신 분이구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 나의 흥분 지수는 갑자기 상승 곡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지. 따뜻한 목소리에 친절한 말투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나한테만 그런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자들에게만 그런 것인가.
나는 이게 너무 궁금해졌어. 당신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거야. 특히 내가 너무 좋아했던 홍콩 배우 유덕화를 닮은 당신을 보면서 내 눈이 절로 커지지 않았겠어?
다른 이들과 있을 때, 나와 단둘이 있을 때, 그리고 다른 여직원들과 있을 때 이렇게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고 그날 밤 잠이 들었지. 다음 날 일찍 출근하고 문을 열었는데 오! 당신이 나보다 일찍 와서 가벼운 청소를 하고 정리하면서 나를 맞이하는 거야!.
- 어, 내가 하려고 했는데요.
- 아, 괜찮아요. 이런 건 남자들이 하는 게 맞아요. 가서 커피 한 잔 하세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야. 과하지 않고 정중한 태도는 늘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상대가 누구든 그런 거라도 나한테만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을 알아보기로 결심했어.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인연은 네 번째 겨울을 불러서 사랑의 증인으로 세우고 함께 하기 시작했지.
아! 그 똘아이 상사가 우리의 함을 지고 축하해 주었는데... 기억나?
한 사람을 안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고,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는 것과 같으며,
아직 써지지 않은 책을 읽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깨달은 것은 문득 집 앞에 핀 꽃을 발견하는 것처럼 30년이 지난 오늘이라는 시간을 만나고였어.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깨닫던 그날처럼 꽃잎 같은 눈이 날리며 춤추듯 세상을 덮는다.
어렵고 무거웠던 지난 일들은 당신과 나의 삶에 황홀한 빛으로 남을 거야.
수많은 굴곡에 산란하는 빛들은 더욱 찬란하겠지.
원래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어질수록 아름다워지니까.
그 빛들은 우리 가슴에도 남아 늘 반짝이는 별이 되고 태양 볕을 담아 두지 않겠어?
우리 그래도 사랑이라는 등 하나 켜고 어려운 세월 잘 건너왔지?
이제 나는 우리 인생에 다른 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단둘이만 주인공인 이야기가 만들고 싶어졌어.
나는 나와 당신을 위해 당신은 자신과 나의 꿈을 안고 서로의 빛을 더하는 삶.
내가 이제부터 바라는 소원엔 오직 당신과 나만 있을 거야.
앞으로의 30년이 기대되는 건 이제 우리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운 지점으로 넘어섰기 때문이지.
우리의 등은 갈수록 더 밝아질거고 더 튼튼한 신발로 갈아 신을 시간이야.
준비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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