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자는 고단한 마음에도 꺼지지 않는 별을 달고 고독한 밤을 숭배한다
어느새 다시 밤이 찾아온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맞이하는 나의 친구들 고독, 외로움, 그리고 밤. 그리고 그때까지 이들을 즐길 체력이 남아 있다면 정말 행운이다.
여기에 뜨거운 차 한 잔, 라디오 DJ의 신 내린 선곡이 더해지면 드디어 나만의 천국이 완성된다.
하지만 가끔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리다 지친 몸이 먼저 잠들면 나의 정신은 깨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아까운 밤을 흘려보내야 한다.
포근한 밤의 숨결에 몸을 묻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에 잠들었던 감성을 한 올 한 올 살려내어 부풀리면 그땐 무얼 해도 머리와 가슴에 꽉 차게 들어선다.
그 외줄 타기 같은 고독함과 세상 혼자인 듯한 외로움도 필수 조건이다. 그래야 더욱 자신에게 집중하며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 우주의 기운이 나를 관통하는 시간에 읽은 책이나 공부, 글이나 신념들은 언제나 북극성 같은 높이로 빛나면서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을 어떻게든 만들려는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어느새 강박처럼 느껴질 정도로 머릿속에 박혀 있어도, 새벽 기상을 하든 밤을 새우든 무수한 시도 끝에 아주 가끔 한 번씩 로또처럼 당첨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워킹 맘의 세월에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보낸 10여년이 겹쳐 두껍고 투박해진 시간을 지나는 동안엔, 그 황금 같은 순간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시간이 있으면 체력이 안되었고, 체력이 될 때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시간과 체력을 확보해도 돈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시간과 돈과 체력의 삼각관계는 철저해서 단 한 번의 틀어짐도 없이 텐션을 유지하며 팽팽하게 돌아갔다. 나는 그 삼각의 균형 위에 올라서려 끊임없이 시도해야 했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갈구하면서 그 틈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긴 병으로 아프던 엄마도 안 계시고 아이들은 다 커서 손이 덜 가니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그토록 원하던 최고의 타이밍을 거의 매일 밤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밤을 온전히 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침 일찍 아버지의 이른 식사도 챙겨야 하고 가족들의 생활 속 루틴은 어김없이 할 일을 줄 세워 놓고 날 기다린다.
하지만 훨씬 가뿐해진 일상으로 오직 나의 컨디션만 괜찮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북극을 돌아다니든 우주로 다녀오든 자유롭게 상상하며 내 친구 3인방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속 오래된 글을 털어 내기도 하고 젊은 작가들의 유려한 글솜씨에 책장을 넘겨 가며 감탄하는 즐거움은,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크고 새롭다.
하루의 밤이 또 흘러간다. 일 초가 아까운데 주워 담을 순 없으니 부지런히 즐기는 수밖에...
즐기는 자는 고단한 마음에도 꺼지지 않는 별을 달고 고독한 밤을 숭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