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일을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시작하다
“엄마! 제발 이것저것 눌러보세요. 겁내지 말고요!”
몇 개월째 거의 매일 우리 집 막내아들에게 듣는 소리 중의 하나다.
각종 모바일 어플 사용법을 한 번 듣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눈치 보고서라도 자꾸 물어볼 수밖에…
SNS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사실 제대로 소통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단계마다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전혀 관련 없는 분야라도 책 보며 독학으로 자격증을 따거나 배우는 일쯤은 언제든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게시물을 올리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것인가.
영어 강의를 듣고 말하기 과제를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고, 관련 해시태그를 쓰고 거기에 강사의 계정 태그까지 해서 업로드하는 과정은 정말 진저리 나게 힘들었다.
이게 웬 바보 같은 인증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데다 같은 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어보는 내가 너무 한심했고 심지어 그러고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이 제일 쉽다는데 나는 SNS의 미아처럼 몇 개월을 홀로 영어 과제하는 것에만 신경 쓰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지루하고 평범한 걸 싫어하는 나는 여러 가지 앱을 배우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SNS의 흔한 유혹'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영어 과제를 다 끝내면서 나의 실험과 연습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나의 e-비즈니스를 위한 제대로 된 계정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하고 마케팅도 배워야 한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지 찾기도 어려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게 된 것보다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이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다들 빠르게 팔로우를 늘리는 방법을 얘기하고 손쉬운 수익화를 내걸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처럼 SNS 세상의 생태계에 대해 경험이 없거나 자신만 늦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 사람들, 그리고 빨리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몸이 달 수밖에...
당장 포기하고 싶었고, 손쉽게 빨리 가는 지름길의 유혹을 몇 번이나 넘기고 나서야 정말 다양한 형태로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지켜보면서 디지털 세상도 땅을 딛고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마음속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일을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시작하다'
나는 내가 20년 동안 사랑해온 <어린이 북아트 프로젝트>라는 일이 있다.
아이들이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손수 책으로 담는 이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아날로그적인 일이다.
코로나 이후 더욱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과연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받아들여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20년을 한 내가 못 하면 이 일은 사라지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소중하고 꼭 필요한 수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면으로 부딪쳐보고자 마음먹는다.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찾아낸 상상 속 이야기는 의미 있는 수다를 통해 더 풍성해지고 쫄깃해진다.
아이들의 그림은 또 어떤가.
그 똑똑한 AI가 모네의 그림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의 엉뚱한 발상의 공을 쫓아갈 수는 없다.
거기에 종이 공학이라고 불리는 팝업의 기술과 접는 책의 조화로움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NFT에 올려도 어느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에 뒤지지 않을 가치와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희소성을 갖게 된다.
가장 환상적이고 마법 같은 일들은
언젠가는 일어난다.
그 모든 일들은
소망에서부터 시작된다.
- 지미니 크리켓 (피노키오 중에서) -
얼마 전 인스타 계정을 새로 하나 더 만들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하나씩 배우고 익히면서 내가 꿈꾸던 것들을 디지털 세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쳐다도 안 보던 SNS 세상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다 아이들 덕분이다.
코로나로 그 많던 수업이 중단되면서 책을 만들던 아이들은 나에게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남들이 하면 쉬워 보이는 것도 나 같은 사람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땐 몰랐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게 처음엔 하나도 어렵더니 지금은 슬금슬금 늘어난 하루의 미션이 꽤 된다.
그리고 매일 나를 키우는 시간이 즐겁다.
SNS 시작하길 잘했어, 아들!
이젠 유튜브도 블로그도 브런치도 도전해 보려고 해.
그러니 말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