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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펜던트 Oct 07. 2024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

스누트 글쓰기 과제 아카이브 - 1

나는 서울을 사랑할까? 서울은 어떤 곳이고, 사랑은 또 무엇일까. 30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는데도 잘 모르겠다.


3년 전 여름, 소꿉친구들과 함께 갔던 런던은 클래식한 젊음의 도시였다. 자기 멋대로 차려입은 사람들의 화려한 출근길, 헐크의 허벅지보다 굵은 몸통을 가진 가로수의 기세, 천년을 살아온 마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서점, 사슴과 사람이 열을 맞춰 걷는 공원. 나는 런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들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차 탓에 눈이 감기면 숙소가 아닌 공원에 자리를 폈고, 하루에 3만 보를 걸었다. 거리에 난무하는 쓰레기와 소매치기도 날뛰는 내 가슴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아름다운 도시와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온 날, 나의 모국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서울의 가로수를 런던에 갖다 두면, 나뭇가지 취급도 못 받을 게 분명할 것이다. 별안간 짜증이 났다. 자동차 경적에 고막이 귀에서 뜯겨 나갈 것 같았고, 머리가 지끈거려 시선을 돌리면 휴대폰만 보며 맥없이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섭기까지 했다. 염치 없이 땅을 부숴 세운 건물들 틈에 하늘은 납작한 배경지처럼 보였다. 지상보다 허공에 더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런데 ‘나는 서울이 싫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봤기 때문이다. 무질서 속의 사랑을. 타인의 고통이 새겨진 자리에 놓인 애도의 꽃다발, 자기의 안전을 계산하지 않고 위험에 빠진 이를 구하는 영웅들의 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에 빠져 있다가도 기꺼이 다시 타인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상처의 터널을 함께 지나 단단한 회복을 향해 나아오는 무수한 걸음들. 나는 이 도시 속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배운다. 오늘의 내가 결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카오스에서 창조가 생겨난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혼돈이 없으면 질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혼란한 서울에 사는 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인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산다. 그래서 서울은 불안정하지만 안전하며, 답답하지만 안락하다. 나는 벗어나고 싶은 이 어지러움 속에 오래 머물고 싶다. 끝없이 방황할지라도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는 이 도시를 곁에 두고 싶다. 지금의 아픔이 우리를 더 친절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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