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 충분하다

세상이라는 길을 자기만의 속도로 걷고 있기에, 우리는 충분하다

by B의취향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주변의 평가 따위는 매일 바뀌는 것.

바뀌고, 바뀌고, 분명 또다시 바뀌기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좋은 말을 듣건

안 좋은 말을 듣건

그저 가야 할 길을 간다.

이거면 충분하다.

- 다카시 아유무 <패밀리 집시> 중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굴까?’라고 묻는다면 무슨 답을 해야 할까. 행복이라는 단어에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살아왔다. 늘 어떻게 살고 싶냐는 물음에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답할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꿈을 찾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깨달아 가는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하고 싶다는 단 하나의 명제만을 가지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나 자신의 기분만을 조절하면 되는 학창 시절에도 온전히 행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시험에도, 친구들의 짧은 말 한마디에도, 남자친구의 표정에도 불안과 짜증이 쉽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 하나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 행복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과는 틀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틀린 것과 다른 것의 차이도 몰랐고, 결코 틀린 인생은 없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누가 보아도 어른인 모습의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행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나를 애태운다. 누군가는 그랬다. 행복은 마음에 있다고. 오늘만을 생각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변에 종종 그렇게 행복을 얻은 이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행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오늘만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모든 것을 낙관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걱정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고민한다. 주변의 시선을 다 무시할 만큼 나 자신에게 자신이 넘치지도 않고, 용기가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강하게 행복을 꿈꾼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갖지 못할 행복을 끝없이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고, 꿈꾸는 매일에 익숙해져 갔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행복이 느껴졌다. 그 처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짧은 인사였다.


“오늘 참 좋다. 왠지 하늘이 포근해. 너에게도 포근한 하늘은 함께이니, 너도 좋지?”


평소였다면 비웃었을 말이었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이었다. 하늘이 포근하다니. 유치해. 그런데 그날은 유독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정말 햇빛에 바싹 말린 이불을 덮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해주는 하늘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함께 행복하자고 주문을 걸 듯 이야기해주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았다. 스스로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조건을 다 가진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이기도 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나고 6개월 만에 나 스스로에게 만들어 놓은 사랑의 기준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만큼 마음이 강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그냥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해 버릴 만큼! 사랑하자 편하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시작된 마음으로 나는 그 사람과 8년째 연애를 하고 있다.


그다음은 2016년의 첫날이었다. 7년간 다닌 회사와 이별한 날이기도 했고, 사회생활의 첫 퇴사이기도 했다. 2년이 넘게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매일 아침 자신과 힘겹게 싸우며 출근길에 발을 내딛던 일을 끝마친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막상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걱정과 서운함, 불안, 약간의 흥분이 몰려와 명확하게 내 마음상태를 느끼지 못했는데, 2016년의 첫날 눈을 뜨면서 온전하게 나는 행복하다고 느꼈다.(시간이 한 달가량 흐른 지금 여전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30초쯤 망설일 것 같지만…!)


물론 그 중간중간 아주 조금씩 행복을 느끼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완전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그런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의지로 행복을 얻었던 기억은 무서워서, 걱정되어서,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등등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 섰을 때였다. 그리고 그것을 했을 때였다. 주변은 매일 바뀌고, 나를 둘러싸고 정답이라고 외치는 모습들도 사람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정답인 방향으로, 나답게, 내 속도로 가면 된다. 그 첫걸음들은 큰 행복이라는 선물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에.


그러나 여기서 절대 잊으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그 순간도, 마음에 들어왔던 행복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니 애초에 실패란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맞는 길이었고, 행복했던 시작이었지만 금세 힘들어질 수 있다. 그게 결코 틀린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면서 다양한 풍경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분명 또 다른 길을 만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나만의 속도로 걷다 보면 행복은 또 소리 없이, 훅 마음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기에,

그 길을 자신의 속도로 걷고 있는,

나와 당신 모두는

그걸로 충분하다!



이 글을 쓴 지 딱 10년이 지났다. (세상에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2026년 1월 1일 나는 또 한 번의 퇴사를 하고 '백수'의 상태로 아침을, 새해를 맞이했다. 상황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행복하다고 느끼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과거보다 불안감은 커졌고 이제는 세상이 참 녹록지 않다는 사실도 알만큼 알아 버렸다. 그래서일까? 꾸준히 행복을 찾았는데 오히려 행복이 사라지는 시간이 더 빨라진 것 같다. 그리고 깨달은 또 하나. 이제 행복보다 눈앞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더 무겁게, 급하게 다가온다는 것.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오늘도 행복을 찾고 있다. 비록 찰나일지라도. 딱 10년 만에.... 마치 마법 주문을 걸듯, 한번 더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본다. 너의 속도로, 너의 마음으로 걸어온 그 시간은 충분했다고. 충분히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