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뭔데? 어떻게 될 수 있는데?"
'보통'이라는 단어는 참 쓰임새가 다양하다. 평균적인, 일반적인, 보편적인, 대체로 등등 단어는 하나인데 그 안에 들어간 의미는 단어를 사용할 때의 온도, 습도, 기분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갈래로 확장된다. 사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이 말의 본 뜻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이다. 생각해 보니 단어의 뜻에 흔히 쓰는 의미가 다 들어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특별하다는 단어와 더 친숙했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성적이 특별한 아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글씨기 실력이 특별한 아이, 100m를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특별한 아이 등 어떤 기준에 가까울수록 주변에서 특별한 아이라는 호칭을 달아줬고, 그 호칭을 얻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자연히 특별하다는 단어와 가까워질 수밖에.
그런데 어느 순간 특별함의 기준을 스스로 정의하라는 미션이 뚝 떨어졌다. 아마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거다. 어른에게는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제공되지 않는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의 가치도 스스로의 생각과 삶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한 마디로 절대적 기준 대신 상대적 기준이, 강제 대신 자율성이 주어진 셈이다. 어른이 됐으니까, 어른다워야 하니까, 어른이라서.
차라리 어린 시절의 절대성이 더 나았다 싶다. '어른 따위 누가 되고 싶다고 했나'라는 마음이 불쑥 올라올 정도로.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30살의 나, 40살의 나와 만나면서 점정 특별함은 내려놓고 제발 보통이라도 되고 싶다는 심정이 된다. 보통이 이렇게 어려운 거였다니, 말도 안 돼. 그래서 일지 모른다. 보통이라는 단어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담아서 다양하게 쓰는 것은.
'보통'의 일상과 이별
나 역시 꽤 오래 보통의 어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1인분의 몫을 하고 월급을 받아 한 달을 살아 내는 보통의 어른. 더 자고 싶어도 일어나 출근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화나는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는 보통의 어른. 그런 어른으로 살기 위해 조금씩 나를 바꿔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통은 상상보다 더 쉽게 깨진다. 2026년이 시작되며 나의 보통은 끝이 났다. 퇴사와 함께 일상은 달라졌고, 하루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세상이 휙휙 변화하는 요즘 같은 때에 적절하지 않은 결정일 수 있고, 덜컥 겁이 날 때도 있지만 한 번은 보통이라는 말로 묻어두었던 내 진심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어치파 내가 없는 내 보통의 일상은 곧 AI로 인해 깨질 거라는 핑계도 스을쩍 내밀었다.
'일을 하다 보면 또 길을 찾겠지, 경험이 생기면 다른 기회도 생기겠지, 일단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지' 같은 생각들로 넘겼던 10년 전의 내가 꼬리표처럼 붙어서, 점점 더 무겁게 나를 끌어당긴다. 10년의 시간이 빚으로 쌓여 결국 앞자리가 4로 바뀌고서도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나는 뭘 하고 싶지? 뭘 좋아하지?'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 살면서 한 번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뒤로 미루고 미룰수록 내주어야 하는 값이 커졌다. 당연히 불안도 덩치를 키워 훨씬 무거워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내가 가장 젊은 상태임을 상기시키며 스스로를 좀 달래 본다. 나에게는 이 시간이,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끝나는 그런 일인 셈이다.
지금은 1단계다.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로 쓴 지 10일이 지났고,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져 시간과 낯가리기를 할 정도로 어색함이 말도 못 할 지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 가지는 '할 일 없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후회와 허무가 몰려온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뭘 위해 애썼을까? 내 안에 쌓인 것들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 언제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지? 등등 답 없는 질문들이 머리에 둥둥 떠오른다. 나는 이 시기를 '나를 찾고 이해하기' 1단계, 혼돈의 시간이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스스로에게 탓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를 100번쯤 외치면 혼돈의 시간을 클리어하고 다음 단계로 접어들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미션을 클리어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까?
일단 그동안 생각만 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직장이나 사회, 타인이 만들어준 보통의 삶 대신 내가 만든 루틴으로 스스로의 보통의 삶을 설계해 보고자 한다. 10일 동안 모닝루틴을 실험 중이다. 언제 일어나야 가뿐한지, 일어나서 얼마의 시간 동안 멍 때리는 것이 좋은지, 오전 시간에 무슨 일을 하면 좀 더 깨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지 등의 생각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다. 지금은 9시에 일어나 가벼운 침대 위 스트레칭을 하고 씻은 후 유산균을 먹고 유튜브 모닝루틴을 30분 정도 들은 후 중학교 수학문제집을 펼치고 약 20개 정도 문제를 푸는 일정으로 오전을 보낸다.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문제를 풀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중학교 1학년 문제임에도 절반을 틀린다. '하, 언제부터 이렇게 멍청해졌을까' 싶지만,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여기에 하루 한편, 브런치에 '오늘의 나, 오늘 나의 보통 일상'을 기록하겠다는 습관을 추가해 본다. 10년쯤 지나 또 이렇게 방황할 때 어쩌면 이정표가 되어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의 일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보내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일상을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나만의 보통을 만들기 위해 애써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만의 보통을 완성하면 그게 결국 나에게는 특별한 하루, 특별한 매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달래고 위안하면서 일단 미션 하나를 클리어해봐야겠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불안과 걱정은 여전히 내 마음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 불안과 걱정이라는 열매를 수확해 없애 버리는 일이 일상의 습관이자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며, 일단은 뭔가를 해 나간다.
다시, 보통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특별하기를 기대했으나 보통도 어려운 어른이 돼버린 나는 다시 보통의 어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보통의 어른은 어차피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거니까, 오늘부터는 지금의 나를 보통의 어른이라고 정의해야겠다. 중학교 수학문제와 씨름하며 혼잣말을 하는 보통의 어른. 이렇게 하나씩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행동을 만들며 레이어를 쌓다 보면 다시 보통의 어른으로, 내가 좋아하는 나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결과는 나만 아는 거니까, 리스크 없는 도전이니 일단 해볼 일이다. 퇴직금으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