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전혀 웅장하지 못하니까요"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거였나?

by B의취향

AI 시대 인간의 삶을 대리 체혐할 수 있다는 설명에 이미 한참 전 베스트셀러였던 <멋진 신세계>를 다시 꺼내들었다. 1932년 작. 지금으로부터 약 94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어떻게 현재를,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모르겠는 것 투성인 미래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특히 통제관과 야만인의 대화 부분에서 굉장히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특성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 통제관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인간은 과연 지금의 우리와 같은 모습일까? 앞으로 나는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런 질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행복에 대한 문장이 눈을 붙잡았다.


"비참한 불행에 대한 과잉 보상에 비하면 현실적인 행복은 상당히 추악해 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안정이란 불안정만큼 그렇게 요란하지 않습니다. 만족한 상태는 불우한 환경에 대한 멋진 투쟁의 찬란함도 없고, 유혹에 대한 저항 그리고 걱정이나 회의가 소용돌이치는 숙명적인 패배의 화려함도 전혀 없습니다. 행복이란 전혀 웅장하지 못하니까요."


무릎을 딱 치고 말았다. 내가 웅장한 행복을 바란 것은 아닐까?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여전히 행복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오늘의 안녕으로 괜찮을까?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손에 쥐고 있을 때는 그것이 소중한지 잘 모른다. 건강할 때 건강을 함부로 대하고, 젊을 때 젊음을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나약해 자기가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꼭 뒤늦은 후회를 한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별탈 없는 일상을 보낼 때는 지루함에 몸서리 친다. '왜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20대 때는 여행지에서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운명적 인연 같은 걸 상상하기도 하고,) 왜 나는 특별함이 없을까?(30대 때는 인생을 바꿔줄 발견이나 행운을 얻는 상상도 했고,)'같은 생각으로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대신 그만큼 뭐라도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잠은 죽어서 자는 거고, 자기계발을 하려면 미라클모닝 쯤은 시도해 봐야 하고, 개인의 삶과 일의 밸런스를 딱 맞추는 라이프 스타일이 필요하고, 나를 설명해줄 취미 한두개쯤은 있어야 하고, 남들과 다른 취향도 갖추면 좋고...! 열심히의 방향과 범위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하다보면 될거라는 생각으로,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나를 혹사하고 함부로 대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점점 허무감이 늘었다. 나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반대 지점으로 튀었다.


내가 좋은 게 먼저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야, 나만 좋으면 됐지 모, 일단 오늘만 즐기자! 그런데 이쪽도 나에게 맞는 방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앞서 느낀 감정이 허무라면,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다.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불안했다. 스스로를 육체적으로 괴롭히다가 이젠 정신을 괴롭힌다.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못할까? 나는 왜 여기까지일까? 나는 왜 이럴까? 결국 나는 오늘의 안녕만으로는 괜찮치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안녕이 내일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 그거,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여전히 불안을 완전하게 다스린다고 하긴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잉여 시간이 많아지면, 사회적 존재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 생산성이 0에 수렴한 상태라면 불안은 덩어리를 더 키워간다. 이럴때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힘은 습관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이 없으면 내가 만들어 주면 되지 뭐'라는 베짱으로. 몸을 움직이는 습관, 머리를 써야 하는 습관, 감정을 다독여야 하는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서 하루 일과에 적절하게 배치해 둔다.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수학문제를 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그러다가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결국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수 많은 미디어와 책, 인터넷에 등장한 내용들이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오늘의 안녕으로 괜찮치 않은 인간이라 여겼는데, 오늘의 안녕을 제대로 찾아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안녕 대신 우중충한 안녕도 있는 셈이니까, 불안을 끌어안은 안녕을 찾아볼 일이다. '그러니까 불안, 이거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다. 불안이 있으니까 잘 사는 생활을 찾아갈 수 있다.' 같은 말로 스스로를 이해시키면서.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 하나로, 돈 버는 일상을 살았다면 지금은 시간까지 있으니까 행복해지는 일상을 살아보자고 마음 먹는다. 물론 돈 까먹는 일상이지만.


행복이 거창하지 않다는 말은, 이런 거였을까?

요즘 나를 움직이는 자기 암시는 '시간도 있고, 일도 안하고, 돈도 못버는데 하루를 온전히 너 좋을 대로 써보기는 해야 하지 않겠어?'이다. 그렇게 핑계만 대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면서 행복한 일상,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행복이 있는 일상을 한번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아직은 통장에 퇴직금이 들어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나를 조금씩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불안까지도 채워지고 있지만, 그 불안마저 습관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로, 당연한 감정으로. 인간에게 부정적 감정 없이 긍정적 감정만 남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충분히 받아드리려 하는 중이다. 긍정만 있으면 경계와 기준이 사라지고, 그저 좋을대로 해버리게 된다. 부정이 구분선의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라고, 여기를 넘어가면 안된다고, 돌아가라고 말해준달까.


웅장하지 않은 행복 중에 하나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단할 것 없지만 내가 나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한 입 먹으면, 객관적 맛 대신 미화된 맛을 느낀다. 이렇게 웅장하지 않은 행복을 하나씩 쌓는 연습을 하다보면, 행복을 습관으로 만들다보면 언젠가 행복 습관이 완성되어서,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습관대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요란하지 않고, 불우한 환경의 멋진 투쟁이나 찬람함 대신, 저항의 유혹이 존재하지 않는, 걱정이나 회의가 침범할 수 없는, 패배의 화려함을 숙명으로 여기지 않는 그런. 웅장하지 않은 행복과 온전히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준비하고 연습한 행복은 나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한 AI와 함께 사는, 그들이 움직이는 세상에 살게 됐을때조차 '인간다음'을 잃지 않게 해줄 것만 같다. 행복이 웅장하지 않다는 말의 의미를 요즘의 나에게서 찾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도, "먹고 사는 방법 같은 건 모르겠고, 일단 행복이라도 찾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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