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죽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매일'의 1950년 5월 15일자 신문입니다. 제 나이로 치면 70년이 훌쩍 넘은 노신사죠. 하지만 저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 저는 '조선매일'이라는 위대한 신문사의 일부이자,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입니다.
제가 겪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서울 중구 정동,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옥 건물 지하실. 이곳은 제가 7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곳입니다. 2024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저는 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처지의 오래된 신문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죠.
"어... 여긴 어디지?" 제가 중얼거렸습니다.
"이봐, 1960년 4월 혁명보도!" 옆에 놓인 동료를 향해 속삭였죠. "우리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알고 있나?"
제가 말한 4월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뜻합니다. 그 날의 뜨거웠던 함성과 절절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아직도 제 기사 속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1960년 신문이 부스스 몸을 뒤척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 역사적인 순간을 우리가 보도했었지. 하지만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으로 본 것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 세상일까?"
그때 지하실 문이 열렸습니다. 흰 머리에 주름진 얼굴의 노인이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최신형 태블릿이 들려 있었고, 화면 속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 거기 어두워요. 조심하세요. 근데 왜 그 먼지 쌓인 지하실에 가신 거예요?"
노인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조선매일의 옛날 자료들을 좀 찾아보려고 그런다, 은영아. 요즘 애들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신문사였는지 모르지. 내가 첫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바로 여기야. 4.19 혁명, 5.16 군사정변, 그리고 그 이후의 숱한 역사의 순간들을 이 손으로 직접 취재하고 보도했단다."
노인의 말에 저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저와 같은 열정이 느껴졌거든요.
노인이 조심스럽게 서류함을 열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저에게 닿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활자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고, 흐릿했던 사진들이 선명해졌습니다.
"와, 이건 6.25 전쟁 발발 직전의 신문이잖아!" 노인이 저를 집어들며 감탄했습니다.
그 순간, 제 몸을 통해 수많은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 기자들의 모습, 4.19 혁명의 현장에서 울려 퍼졌던 함성, 그리고 군사 독재 시절 압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언론의 자유를 향한 열정...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신문이... 살아있는 것 같아."
"할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태블릿 속 은영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노인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건물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진이다!" 노인이 소리쳤습니다.
흔들림과 함께 서류함이 넘어지며 오래된 신문들이 바닥에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수백 장의 신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힘을 모아요!" 제가 외쳤습니다.
주변의 신문들도 하나둘 깨어나 제 외침에 화답했습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노인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떨어지는 물건들을 막아내고, 흔들리는 건물에서 노인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노인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수많은 신문들이 마치 보호막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책장이 넘어지려 할 때, 우리는 재빨리 날아가 그것을 막아냈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날아올 때면, 우리가 그 앞을 가로막아 노인을 지켰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노인이 중얼거렸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소방대원들이 지금 구조하러 간대요!" 은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괜찮아, 걱정마. 네 할아버지는 우리 조선매일이 지켜주고 있단다. 말 그대로 말이야."
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제 잉크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주변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하고, 노인은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꼭 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은영아, 오늘 내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단다. 이 신문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야. 이건 살아있는 역사야."
은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할아버지의 눈에서 반짝이는 생기를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할아버지, 그 신문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노인은 손녀와 함께 앉아 저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갔습니다.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행복감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이제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역사였고, 미래를 향한 메시지였습니다. 제 잉크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영원한 다리라는 사실에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70년이 넘는 긴 잠에서 깨어나, 저는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하는 살아있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이 놀라운 경험을 통해, 저는 과거의 기록이 단순히 묵은 종이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역사 속에는 아직 들려주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쉬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주세요. 그리고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모두 역사의 일부이며,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이죠.
저도 실은 기자 출신입니다.
종이책 시장이 어렵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소문이 아니지만, 종이신문도 비슷한 처지라는 걸 아시는 분들이 의외로 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신문으로 내세웠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신문을요.
오래된 신문을 의인화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그 신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제가 그 신문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제 기억 속의 역사 수업이 떠올랐습니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그 사건들이, 신문의 시점으로 보니 갑자기 생생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지진 장면을 쓸 때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왜 안 되겠어? 이건 우리만의 상상 속 이야기인걸.' 하는 생각에 그냥 재미있게 써내려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