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파랗고 투명한 물을 한 모금 떠 마시듯, 이 글을 마셔보길 바란다. 이 글에 담겨있는 작품들의 향기도 느꼈으면 좋겠다. 몸이 시원해지고 새파래지다가도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기를 기원한다.
음악과 글과 카페와 술과 영화. 그런 것들을 한 글에 담아보고 싶었다. 내가 애정 하는 것들을 한 카테고리로 솎아내는 힘은, 또한 내가 더없이 사랑하는 색“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시작은 역시, 블루 <BLUE>이다.
파랑은 파랑이라고 발음한 순간 맑은 느낌이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블루우- 하고 발음하면, 한없이 우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울함. 허망함.
신비로움. 신선함.
깔끔함, 차분함, 상쾌함, 명료함
바다와 하늘, 물 희망 청렴 밝음 다정함
파랑의 이런 다양한 느낌들을 둠칫 둠칫-하는 사운드에 담은 좋아라 하는 음악들이 참 많다. 제목은 모두 블루이다. BLUE라는 제목은 담을 수 없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는 힘을 가지고 있다. INVIZ의 BLUE로 시작하는 애정 하는 블루 송들이 이어진다. 백예린의 BLUE, Small Talk의 BLUE.... 플레이 리스트는 이내 수연과 볼 빨간 사춘기의 블루로 넘어간다. 그리고 태연의 블루로 이어진다. 넌 나의 블루우우우우우~ 우우~~~
아, 어쩜 이리 블루 송들은 다 좋을까.
이 글은 블루 음악을 들으며 써 내려가는 파랑을 향한 찬사이다.
먼저 <파랑>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파랑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다. 딥한 파란색으로 가득 찬 표지가,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확 끌어당겼다. 파랑은 처음에는 기피되고 천대받던 악마의 색이었다. 푸르스름한 악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가. 그런데 12세기부터는 신학적으로 중요시되기 시작했고, 성스럽고 소중한 색으로 인지되기 시작하였다. 더 후에는 아름다운 청색을 구현할 수 있게 된 염색업자들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문장가들, 화가들에게도 사랑받기 시작했다. 책에는 다양한 파랑을 사용한 작품들이 나온다. 나는 그중에 ‘리비아 빌라의 벽화’라는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당시 로마 사람들이 상상했던 매혹적인 정원이나 천국의 향이 그림의 배경에서 정말 난다. 이제 21세기의 우리는, 청색을 빼놓고는 좋아하는 색에 대하여 논하기 어렵다. 당신과 나는 매일 진을 입으며 파랑을 탐닉한다.
<천 개의 파랑>이란 작품도 애정 하는 작품이다. 한국 과학 문학상을 받은 SF소설집. 그녀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는 차가운 듯 애틋하다.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 로봇 콜리는 다채로운 색이 섞여 드는 하늘을 ‘파란 분홍’이라고 부른다. 로봇은 과거의 그리움이나 후회를 오늘의 행복을 쌓아 덮을 수 있다 말한다. 천 개의 파랑 하늘들이 모여서 우리는 이루어진다. 사람보다 더 섬세한 로봇 콜리. 어쩐지 신비하고도 단아한 파랑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는 <파랑 오리>라는 동화책을 함께 읽었다. 주인공 파란 오리는 새끼 악어를 거두어 기른다. 당연히 자기 자식이 아닐 터였다. 이내 오리는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린다. 이번에는 악어가 파란 오리를 보살핀다. 청아하고 따뜻한 파랑이다. 서로를 보살펴 가며 살아가는 두 생명체. 온통 흰 배경과 까만 선의 그림 속에서 유독 파아란 것은, 그 둘을 따스히 안아주는 파란 연못과 파란 오리의 부리였다. 나는 책의 파랑들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초록 오리나 빨간 오리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 피어올랐다. 봄의 시작에 어울리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했다. 파란 연못처럼 누군가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블루가 되고 싶다.
가장 애정 하는 책에 대해서 끄적이다가도, 찌뿌둥함이 몰려올 때는 402번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선다. 공교롭게도 서울의 간선 버스는 파랑이다. 그리고 좌석도 파란빛이다. 후후. 내 발걸음은 애정 하는 카페, <born to be blue>로 향한다.
테이블 중간에 놓인 신비한 파란 장미. 몇 개의 파란 액자들. 그리고 몸의 긴장을 놓게 만드는 재즈 선율. 차분한 딥블루의 벽. 카페 사장님은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 쳇 베이커의 지독한 팬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카페 이름을 이렇게 지으셨다고. 그래서인지, 사운드가 특히 좋다. 어떤 커피를 팔까? 보통 파란색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는 식욕을 감퇴시킨다고 하던데 괜찮을까? 걱정도 잠시. 커피색 에스프레소 위로 쏟아지는 한줄기 파랑 시럽은, 시원한 절벽 폭포 한 줄기를 훔쳐 넣은 듯 탐스럽기만 하다.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란다. 사랑하면 호기심이 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파랑을 사랑하는 나는 파란 음료에 대한 호기심도 애정도 넘쳐흐른다. 커피 위에 파란 거품 크림을 얹은 <클로저>도 맛있고, 우유에 파란 시럽을 넣은 <본 투 비 블루> 아이스 라테도 근사하다. 달지만 좋아서 두 잔이나 마시고 만다. 카페를 떠나기 싫어지는 섹시한 재즈 음악. 오늘 저녁도 재즈영화와 함께 하고 싶어 진다.
집에 와서 <봄베이 사파이어 진>의 병을 연다. 나는 진 중에서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이 파란 병을 가장 사랑한다. 음, 그윽한 향기. 혼자 술 한잔하며 보기 좋은 영화가 탁- 하고 머리를 스친다.
< Hello Death, Hello Fear. Fuck You. > ‘본 투 비 블루‘라는 영화 속 쳇 베이커의 대사이다. 마성의 대사. 그의 심정이 잘 묘사된 대사라고 생각한다. 잊히지 않는 강렬함. 우울하고 나약하지만 매력적인 인간이 담겨있는 그윽한 영화이다. 일단 화면이 너무 아름답다. 천재로 태어났지만 무대가 두렵고 버림받을까 무서웠기에 그는 마약을 했다. 안타깝다. 인생의 사랑을 만나 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또다시 마약을 하고 만다. 색소폰 연주와 사랑과 약, 그렇게 살아남는 인간에 대한 우울한 영화. 이상하게 우울한 날에는 이런 영화가 더 당긴다. 나보다 더 깊게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보면서, 나의 우울을 위안한다. 미친 듯이 좋은 재즈음악과 아름다운 장면의 여백들은 귀와 눈을 호강시키며 나의 우울도 고급스럽게 매만져준다. 에단 호크의 신들린 연기는 봐도 봐도 정말이지 지루하지 않다.
파랑에 대해 쓰고 쓰다 보니, 이토록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글이 가득가득해졌다. 아! 파랑 하면 또 앙리 마티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하아- 더 이상 글이 길어진다면, 파랑이고 뭐고 읽기가 힘드실 테니, 이번 편은 이만하겠다.(웃음)
괜스레 울적한 일요일 아침엔, 봄이니까 바다를 향해 파란 나의 차를 몬다. 드라이브 음악으로는 <kamel의 blue>나, <keshi의 blue>도 추천한다. 변태처럼 다양한 블루 송을 섞어 들어가며, 드라이브를 떠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