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할모와 바디 더블링

집 나간 집중력 찾기 프로젝트

by 김자라

"저는 오늘 브런치 연재 글 한 편 쓰려고 합니다."

"저는 설거지 하고 빨래 갠 다음에 강의 한 개 들으려고요."

"저는 책 좀 읽다가 밀린 다이어리 쓰려구요~"


이른 아침, 또는 오후, 또는 한밤 중. 온라인 화상 회의로 모인 사람들이 소소히 자신의 목표를 나눈다. 화면에는 책을 읽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 진짜로 설거지하고 빨래를 개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모여있으며, 대화없이 각자 할 일에 열중한다. 때때로 채팅 창에는 '5분만 자리 비울게요', '잠시 전화받고 올게요!' 같은 메세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물리적 혹은 가상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두고 한국어로는 "각할모(각자 할일하기 모임)*", 영어로는 "바디 더블링(Body Doubling)"이라고 부른다.

(*모각코(모여서 각자 코딩)이라는 용어도 있다)


원래는 ADHD인들의 업무 및 활동 완수율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하지만, ADHD인들 뿐만 아니라 그냥 '오늘은 집중력이 좀 떨어지네'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각할모, 또는 바디 더블링 세션에 참가한다. 오늘 목표를 공유한다. 그리고 완수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온전히 하루를 채우는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되었던 것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 있으면 전혀 집중하지 않았고, 하루 계획표를 흘긋 노려보며 딴 짓 하는 것으로 하루 하루를 보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증: 바로 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집 나간 집중력을 찾는 나의 여정


도서관

퇴사한 당일 했던 것은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회원증을 만드는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회원증 만든 당일을 제외하고 한 번도 그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변명은 다양했다. 가려면 너무 멀고, 버스도 타야하고, 좀 단정히 입고 가야 할 것 같고... 가장 결정적으로, 노트북 좌석이 다닥다닥 붙은 10자리 밖에 없었는데, 그 마저도 하루종일 동네 할아버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스터디 카페

독서실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스터디 카페를 먼저 찾았다. 요즘 스터디 카페는 예전 독서실처럼 1인용 책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을 할 수 있는 넓은 책상이나 스터디룸 등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히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독서실 만큼 조용히 해야 한다는 점이 아주 부담스러웠다.


일반 카페

개인 카페는 공부하러 가기 죄송스럽고, 프랜차이즈 카페를 주로 찾았지만, 몇 시간에 한 번 씩 음료를 시켜야 수지타산에 맞는 건지 생각하기가 번거로웠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다르긴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오갔다. 한창 집중해야 할 오후 1~2시쯤 되면 식사 후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카페의 음악 소리 볼륨도 커졌다. 더운 날이면 덥다고, 추운 날이면 춥다고, 저마다의 이유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에서는 채 한 시간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뽀모도로 타이머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왓다. (왜 이름이 뽀모도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25분, 30분, 50분 등의 집중시간을 정해놓고 그 사이 5~10분 휴식을 인터벌로 반복하는 타이머를 설정해놓는 것을 뽀모도로 타이머라고 한다. 자신이 가능한 만큼 짧은 시간 집중하고 휴식을 보상으로 주는 방법으로, 전용 알람시계도 있다. 핸드폰 앱으로도 설치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 집중 시간만큼 식물을 키우거나 우주를 탐험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여행하는 등 다양한 컨텐츠를 주제로 한 어플리케이션이 많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휴식 시간은 계속 늘어졌고, 짧은 집중시간은 전혀 업무 진행량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계속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쳐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자율 스터디

누군가 곁에 있어야 공부든 업무든 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카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우리 지역의 자율 스터디 단체방에 들어갔다. 원하는 시간에 공부할 카페를 지정해서 일정을 올려놓으면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이 실시간으로 내가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되면서 집중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점은,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장소에서 스터디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때로는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기 위해 30분도 넘게 이동해야 할 때가 있었고, 결국 귀찮아서 안 나가게 되기도 했다.



결국, 바디 더블링


온라인 바디 더블링

집 나간 집중력을 찾는 나의 여정은 온라인 바디 더블링에 당도했다. 진짜 나에게 맞는 최고, 최적의 방법을 드디어 찾았다!

시간 별로 호스트가 주최하는 세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으며, 신청한 시간대별로 메일로 안내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매 세션은 2시간으로 진행되는데, 첫 5분은 본인이 두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소개하는 체크인 세션이다.

이후에는 45분 집중 - 10분 휴식 - 45분 집중 - 체크 아웃 시간을 가진다.

체크 아웃은 반대로, 본인이 했던 일을 마무리하며 회고하는 시간이다.


이 방법이 나에게 가장 잘 맞았던 이유는

1. 무료로 진행된다!

2. 원하는 시간에 맞춰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3. 소리는 끄고 진행하기 때문에 음악도 틀어놓을 수 있다!

4. 호스트가 진행하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모을 필요가 없다!

5. 집에서 할 수 있다! 무거운 노트북과 전공 서적을 카페로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6. 무엇보다도, 체크아웃 시간에 서로를 향해 따듯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다 잘하면 최고, 다 못했어도 최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바디더블링 플랫폼은 아래와 같다.

(정기적으로 매일 운영하는 곳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유일한 것 같다.)

https://www.nevertheless-bodydoubling.com/


정해진 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상시 세션이 필요하다면, 24시간 참여가 가능한 디스코드 채널도 있다.



https://discord.com/invite/sUsM2xCJ3g



다른 사람에게 집중력을 잠깐 빌리고 싶은 ADHD인들, 발등에 불떨어진 비ADHD인들, 모두 웰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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