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2023>
생각이 복잡할 때는 종이에 적자
일기를 적어도 좋고, '딴 생각 종이(공부할 때 잡다한 생각나면 쓰는 종이)' 적어도 좋고, 블로그나 메모에 적어도 좋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촉하면 그 생각이 더 강화되어서 생각을 더 하게 되고... 으악!
하여튼 생각나는 게 있으면 뱉어내는 게 더 좋다. 적어도 나에겐.
<ver.2025>
어릴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은 '천둥치는 밤'이라는 책이었다. 천둥치는 밤에 너무 많은 생각이 몰려와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무한의 끝은 어딜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외계인이 우리 사이에 숨어있다면 어떡하지? 다양한 상상으로 밤을 지새우는 소녀의 의식의 흐름이 귀여운 펜 일러스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언제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한다는 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 여겼고, 그래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불확실하고 비관적인 미래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에 빠졌다. 어릴 적에는 그런 상상이 나를 압도해 숨이 막히는 공포를 느낀 적도 있었다.
생각이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방해하기 시작할 때, 공부나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거나 꼭 필요한 결정을 미루게 만들 때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고민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이 과도하게 많은 경우다.
미래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불확실한 요소가 얽힌 상황을 마주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 고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 좋다. 마구잡이로 단상을 메모해도 좋고, 일기처럼 차분히 적어 내려가도 좋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듯 글을 써 내려가도 된다.
그 다음에는 그 고민을 구조화해 보자. 이 고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가 가진 해결책은 무엇인지, 혹은 해결책이 전혀 없는 상황인지 정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문제를 풀어낼 구체적인 해결책인지, 어려운 상황에 대한 공감과 지지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조언과 충고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고민은 방향을 얻고, 나를 잠식하던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민은 처음 마주하면 막막하지만, 충분히 다루고 교감하면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지점토와 같다. 결국 두려움은 ‘형체 없음’에서 비롯되기에, 고민에 모양을 부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앞에서 주저앉지 않게 된다.
상상을 하면서도 그 상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끔찍하고 무서운 상상이 떠오를 때나, 잠을 자야 하는데 수많은 심상이 떠올라 수면을 방해할 때가 그렇다.
‘00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고 의식할수록 오히려 그 주제에 더 집착하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심리학적 현상이다.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럴 때는 감각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첫 번째 방법은 오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입안에 맴도는 맛은 어떤가? 귀에는 어떤 소리가 들어오는가? 코끝에 닿는 향은 무엇인가? 손끝에서, 혹은 공기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어떤가? 아주 단순하지만, 오감을 세밀하게 느끼는 것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극이 없는 실내 공간, 특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는 청각이나 후각을 활용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시각만을 활용하는 두 번째 방법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눈앞의 세 가지 사물을 반복적으로 바라보며 인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필, 컵, 선풍기가 있다면, 차례대로 그 사물을 바라보며 눈에 담는다. 중요한 것은 단어로 사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에 들어오는 형태와 색, 질감 같은 구체적인 인상을 인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연필을 본다’가 아니라, 그 모양과 빛깔을 온전히 느끼는 과정이 핵심이다.
(상술한 두 방법은 사실 공황장애가 있었을 때 공황 전조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훈련했던 방법들이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생각이 넘친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건 특별한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엉킨 실타래 같은 생각의 흐름에서 창조의 영감을 찾는 경험은 특별한 것이다.
잊고 있었던 추억의 조각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를 조우하는 과정 또한 특별한 것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괴로워하자.
살아있는 한, 나는 항상 생각이 복잡한 사람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