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들의 문제점

아니면 내가 문제인가?

by 김자라

8살 이상 연상의 남자를 세 번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다리였다. 양다리도 아닌, 세 명에게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심지어 피해 여성 중 한 분과는 3년 동안 동거를 하던 사이였다. 나의 존재는 그저 그의 거짓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도박 중독자이자 빚쟁이였다. 처음에는 맞춤형 정장을 입고 세련된 안경을 가지고 다니던 신사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일들이 드러났다. 그는 돈을 빌리기 위해 부모님의 죽음까지 꾸며내는 허언증 환자였다. 나중에는 ‘그런 일쯤은 누구나 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내 마음속의 불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 다음에 만난 5살 연상의 남자는 달랐다. 진짜로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말투도 차분했고, 약속을 잘 지켰다. 처음으로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에게 암 선고가 내려졌다. 그리고 단 두 달 만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이별했다. 병과 싸워야 하는 그에게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았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논하던 또 다른 남자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내가 출연한 방송의 댓글창에서 그가 남긴 악플을 발견했다. 장난처럼 쓴 말이라며 변명했지만, 내 이름이 들어간 그 문장은 너무나 선명했다. 이별을 고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했다.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이상한 이성 관계는 수없이 반복되었다.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오빠에게 성폭행 당했던 일, 관심 있다는 것을 성추행으로 표현하던 동기, 스토킹처럼 SNS의 모든 글을 주시하며 수시로 연락하던 후배.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가 반복될수록 마음 한구석이 점점 더 의문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가 너무 순진해 보였던 걸까?’
‘그저 운이 나빴던 것뿐일까?’
‘아니면, 나에게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상담을 받을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결국 그 선택을 한 건 자라님이에요.”


그 말이 옳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스스로 파멸을 택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 말은 늘 나를 죄책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결국 나는 ‘그런 남자들’에게 유독 취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렇다면 이제는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왜 그들은 나에게 다가왔고, 왜 나는 그들에게 흔들렸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게, 내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나는 늘 ‘강렬한 사람들’에게 이끌렸다. 말이 빠르고, 감정의 기복이 크며, 나를 향한 관심 표현이 거칠고 분명한 사람들.

그들은 처음에 늘 나를 ‘특별하게 대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특별함’은 통제나 의존, 혹은 폭력적인 감정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 패턴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ADHD인은 행동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도 충동적인 면모를 보인다. 늘상 뇌에 도파민이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과 즉각적인 보상을 강하게 추구한다. 이 때문에 관계에서도 “강렬한 시작”과 “빠른 몰입”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대개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과 결합될 확률이 높다. 결국, 스스로도 모르게 파란만장한 연애를 찾아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특성이다.


잦은 실수와 실패의 반복으로 타성에 젖어 있는 상태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낮아진 자존감과 뻥 뚫린 자아효능감을 채우는 척 하는 가스라이팅이 들어올 때도 쉽사리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일이 벌어지면 비로소 '또' 일이 벌어졌구나, 인지하고 당연하게 넘어간다.


사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관계는 나를 소모시키고, 결국엔 파국으로 끝난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만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평온하고 건강한 관계는 오히려 낯설고, 심지어 지루하게 느껴졌다. 도파민의 파도가 잠잠해지는 순간, 마음속에 공허함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강렬한 시작’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비슷한 결말로 되돌아가곤 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나는 이제 ‘이상형’보다 먼저 충족해야 하는 필요조건을 세웠다.


내가 다가가는 속도를 기다려주는 사람.

내가 가진 다른 관계를 존중해주는 사람.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이건 단순히 취향의 변화가 아니다. 내 뇌의 특성과 감정의 패턴을 이해한 끝에 세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드는가’—안도감인지, 아니면 불안한 긴장감인지—그 감각을 가장 먼저 점검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테 안경이 잘 어울리고 손이 예쁜, 운동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연애 대상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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