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일어나는 5단계 방법★
1. 눈을 뜬다.
2. 침대에서 일어날 마음을 먹는다.
3. 침대에서 일어나서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4. 실제로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을 상상하며 몸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5. (아주 힘들겠지만) 실제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의 정신과 선생님께 매일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한 나의 계획과 노력을 자랑스럽게 발표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계획 안 하고도 침대에서 일어나서 물 마시러 가요."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간단한 행동조차,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겨우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행 기능 조절의 어려움은 명확한 ADHD의 핵심적인 기능 장애다.
ADHD의 실행 기능 장애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시작 장애(Initiation Deficit)’다. 이는 과제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내적 추진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단순히 “일단 시작”이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간극이 너무 크다. 이로 인해 “의지가 약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하지만 행동 지연은 게으름과는 다르다. 게으름은 ‘하기 싫음’에서 비롯되지만, ADHD의 지연은 ‘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느끼지만, 그럼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ADHD라는 병명을 갈망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무력감에 이유와 이름을 부여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 ADHD 환자들은 계획 및 조직화의 어려움을 겪는다. 과제를 세부 단계로 나누거나, 순서를 정하고, 필요한 도구를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런 계획 능력의 결핍은 과제 전체를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게 만들어 압도감을 불러온다. 결국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정에 휩싸여 시작을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실행 기능의 문제는 단순한 ‘의지력의 부족’이 아니라 뇌의 자기조절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한계다. 따라서 ADHD를 이해하려면 ‘노력 부족’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두뇌가 과제를 처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5단계 방법처럼, 내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러온 특성들을 소개한다.
나는 아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법을 잘 모른다. 멀리 내다보는 플랜은 늘 막연하고,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아침,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다. 그 계획에는 업무나 공부, 약속처럼 큰 일도 있지만, 아침에 약 먹기, 샤워하기, 설거지하기, 빨래 걷기처럼 사소한 일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의 윤곽을 세세하게 쪼개 두어야만 마음이 조금은 안정된다. 해야 할 일들이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하루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청소를 좋아한다.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무선 청소기를 줄 정도로, 청소는 나에게 작은 즐거움이다. 바닥에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청소기를 돌린다. 쓰레기봉투도 일부러 작은 용량으로 사서 자주 버리러 나간다. 깨끗하게 비워내는 그 감각이 좋다.
그럼에도 내 방은 늘 어수선하다. 누가 한바탕 뒤집어 놓은 듯 물건들이 제자리를 모른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깨끗하지!’ 하고 만족하다가도, 정돈된 타인의 공간을 보거나 “좀 치워라”는 말을 들을 때면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정말 더러운 걸까?
인터넷에서 본 정리법을 따라 체계를 잡아보기도 한다. 서랍을 구획별로 나누고, 라벨을 붙이고, 물건의 자리를 정해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질서는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깨끗하지만 어지러운 방,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공간이다. 먼지는 없지만, 질서는 늘 무너져 있다.
언젠가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약 100장의 슬라이드로 구성된 PPT를 만드는 일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절반 정도밖에 끝내지 못했다. 그때 상사가 다가와 어디까지 했는지 물으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반을 했다’고 해도 그게 1~50페이지를 끝냈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5페이지를 하다가, 10페이지로 건너뛰고, 79페이지를 하다가 다시 6페이지로 돌아와 작업했다. 그렇게 뒤죽박죽 만든 결과가 ‘대략 절반’이었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도와주시면 됩니다”라는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상사의 도움 없이 혼자 밤을 새워 일을 마쳤다.
사실 나도 안다. 우선순위를 세우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면 영원히 일을 끝내지 못한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만 정리하다가 하루가 끝나버린다.
그래서 나는 결국 손에 잡히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엉망처럼 보이지만, 그게 나에게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혼란 속에서라도 어떻게든 일을 끝내는 것 — 그것이 내가 일을 해내는 방식이다.
'얼레벌레'는 어영부영, 대강대강, 얼렁뚱땅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넘기는 모양새를 나타내는 부사어다.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표준어는 아니라는 점에서,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5단계나 거쳐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얼레벌레, 내일도 얼레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