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일에 치여 밤을 새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면서도 일말의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할 일을 해내고 있을 때, 누군가 새로운 일을 제안한다.
"이거 같이 해보지 않을래?"
이성적으로는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이미 한계라 일을 늘리면 안되는데... 일단 재밌어 보이므로 하겠다고 한다.
아... 왜 그 때 나는 나 스스로를 말리지 않았을까.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서 울면서도 일을 해치우는 나의 미래가 선하다.
대학교 4학년 막학기 때 나는 이런 일들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졸업 논문
타대학 연구실 인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민참여자문단
과학 커뮤니케이터 - 지방 중, 고등학교 강연
1930년대 과학 전문 서적 번역
대외활동(기자단) - 영상 제작
물리학과 홍보 영상 제작
토플, GRE 시험 준비
1학년 전공 수업 조교
수업 4개
크로스핏
헬스 동아리
운동 인스타 계정 - 가끔 협찬
로스트 아크(게임)
연애
이 모든 일이 한 학기, 3개월 동안 벌어지고 있었고, 단언컨데 이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원 첫 학기에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께는 비밀이다)
연구
저널 클럽
전공 수업 4개
대학교 수업 조교
학교 천문대 유튜브 관리자
000자연사박물관 강사
000 코딩 학원 강사
IELTS, GRE 준비
헬스 + PT
운동 인스타 계정 - 가끔 협찬
연애
여가 시간이 거의 없는 대학원생 생활이 시작되며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일을 동시에 벌리고 울면서 해치우고 있었다.
이쯤되면 내가 일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이 나를 하는 지경이었다.
수많은 일들을 벌리던 습관은 공황 장애가 생기며 일단락되었다. 공황의 원인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였지만, 어쨌든 당장은 많은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과로의 반복은 비단 나만이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ADHD인들은 너무 많은 일을 벌인다.
ADHD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보상보다 즉각적이고 눈앞의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새로운 업무나 프로젝트를 맡는 것은 일시적인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며, 이는 ADHD 뇌에 필요한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이 흥분은 일종의 '쾌감'처럼 느껴져, 이성적인 판단 없이 "할 수 있다!"고 충동적으로 결정하게 만든다.
또한, 시간 개념을 인지하는 것을 어려워 하기 때문에, 눈앞의 '새로운 일'을 수락했을 때 미래에 겪게 될 시간 부족, 스트레스, 과부하 등의 고통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당장의 'YES'에서 오는 만족감이 미래의 복잡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업무를 수락한 후, 실제로 그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행 기능의 약점이 드러난다.
과제를 수락할 때, 머릿속에서는 일이 완벽하고 빠르게 처리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만 재생됩니다. 실제로 필요한 시간, 노력, 복잡한 단계를 현실적으로 계산하는 조직화 능력이 부족하다. (예: "이건 30분이면 끝낼 수 있어." → 실제로는 3시간 소요)
또한, 여러 업무가 쌓이면 무엇부터 시작하고, 어떤 것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모든 업무를 동시에 하려고 시도하거나, 흥미로운 일만 골라 하면서 마감 기한이 다가올 때 극심한 압박감을 느낀다.
새로운 업무나 어려운 도전에 'YES'라고 답하는 것은, ADHD 환자 본인이 가진 낮은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도 있다. 만성적인 실수나 실패로 인해 "나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보상받기 위해, 무리한 업무를 수락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업무를 수락할 때 잠시 느꼈던 강렬한 '과몰입' 경험을 다시 기대한다. "이번 일은 내가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일 거야"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지루하고 복잡한 일과 마주하며 에너지를 잃고 힘들어하게 된다.
결국, ADHD를 가진 사람이 쉽게 많은 업무를 맡는 것은 눈앞의 즉각적인 자극과 미래에 대한 비현실적인 예측이 결합된 결과이며, 나중에 오는 고통은 실행 기능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해결법은 단 한 가지다. 스스로 시간적, 체력적 한계를 인지하고, 새로운 업무를 수용하기 전에 충분한 생각을 거치는 것!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며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지만, ADHD인들은 결정을 미루고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한 가지 일을 끝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인보다 상담 전문가에게 혹시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점검 받는 것이 일의 양을 조절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지인들은 이미 내가 많은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에서 조언을 듣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잇다.
물론 나도 아직 비는 시간이 생기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꾸겨넣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버릇은 아직 고치지 못했다. 그나마 누군가 재미있어 보이는 새로운 일을 들고 왔을 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결정을 미룰 수 있게 된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