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20대 초반에는 군대 간 친구들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았다. 자대 배치를 받은 이후에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메신저로도 연락할 수 있었지만, 훈련소 생활 동안에는 핸드폰 사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전용 어플을 통해 인터넷 편지를 썼고, 답장은 손 편지로 받았다.
지금도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하지만, 20대 초반에는 모두가 막연히 두려워하고 그만큼 기대했던 것 같다. 특히 코로나 19 시대에 군대에 입대한 친구들은 훈련 시간이 줄어들면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손으로 쓰는 편지에는 어쩐지 조금 더 진심을 담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평소보다 조금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편지들.
그 중에서 당사자의 허락을 구한 세 편의 편지를 공개한다.
일시 : 2020.05.24
보낸 이 : P군
받는 이 : 연극 동아리 000 동기들
000 친구들에게,
다들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지?
밤만 되면 너희들 이름을 되뇌이다가 잠에 들곤 해. 부르고 싶은 이름들이 너무나 많고, 보고 싶은 얼굴들도 한 없이 많지만 애석하게도, 너희를 만날 수 없기에 슬프구나. 지금쯤 시험이 끝났을지, 이 편지가 도착할 때면 너희는 뭘 하고 있을지, 바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구나.
나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단다. 핸드폰과 떨어져서 지내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지내는 것이 처음에는 꽤 어색하고 답답했는데, 점점 적응이 되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제 인편(=인터넷 편지)도 읽을 수 있어서 너희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겠지? 아직 00이라는 친구에게 온 편지만 전달 되었는데, 나머지 친구들의 소식도 기다리며 훈련 생활을 버티고 있을게. 그렇다고 바쁜데 무리해서 편지하지 않아도 괜찮아.
건강하게만 있어다오. 나라는 내가 지키고 있을게. 곧 내 뒤를 따라 입대할 친구들이 고생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아프구나. 너희들 걱정은 내가 다 할테니까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지내려무나. 편지도 많이 써주도록 할게.
000 친구들아, 난 내가 00 대학에 입학한 것이, 000 동아리에 들어온 것이, 그래서 너희를 만난 것이 내 인생에서 정말 큰 축복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내 소중한 인연이 되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쭉 계속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만 줄이고 만약 기회가 되면 또 (편지) 해보도록 하마. 안녕.
- P군
일시 : 2020.08.01
보낸 이 : L군
받는 이 : 김자라
자라자라,
안뇽~! -L군이야! 군대에 온 지 벌써 20일차인가? 그럴거야. 시간이 진짜 빨리가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방학이 딱 한 달 남아겠네. 나는 (자대) 배치까지 한 20일 정도 남은 것 같아.
(군인 카페에 업로드된) 내 사진을 잘 봤다니 아주 다행이군! 나도 내 사진을 못 보긴 해?
그냥 단체 사진하고 개인 사진을 받았는데, 나머지 생활관에서 찍은 사진은 아직 못 받았지 뭐야 ㅋㅋ
암튼! 나느 여기서 훈련이 9개 밖에 남지 않았어! 아마 훈련하면 시간이 금방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
다들 나보고 살쪘다고 하드라고. 여기서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여주고 심지어 부식이라고 해서 밤에 초콜릿, 코코팜, 떡, 비타 오백, 감동란 이런 게 간식으로 나오거든. 그래서 완전 살이 찌고 있지. 근데 그만큼 많이 움직이긴 해!ㅋㅋ 그래서 많이 배고파
누나도 직장 다니고 인턴도 하고 그래서 많이 바쁘겠다.. 유학 준비는 잘 하고 있어?ㅎㅎ 이것저것 하는 게 더 많아져서 완전 바쁘겠다.. 누나가 직장 다니고 하는 거 보니까 왠지 어른 같다 ㅋㅋ
그래도 누나가 (우리 연극 동아리) 극 쓰는 건 완전 찬성이야!
여기서 진짜 심심할 때 (연극) '빨래' 노래 흥얼거리면서 인생 회상을 하고 있는데, 내 인생에서 연극이 진짜 중요했고, 연극하면서 정말 행복했더라고. 진짜 다 같이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또 할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
나는 잘 지내고 있고, 누나도 잘 지내면 좋겠다!
이 편지가 언제 도착할 지 모르겠지만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며.
- 2020년 8월 1일 12시 23분,
L군이.
일시 : 2021.07.09
보낸 이 : J군
받는 이 : 김자라
정말 존경하는 자라 누님께,
안녕 누나! 나에게 인편(=인터넷 편지)을 (익명으로) 보낸 범인을 찾아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 ㅋㅋ
사실 편지 위쪽에 누가 보냈는지 힌트가 아주 잘 나와있기 때문에 보낼 수 있는거야.
오늘 날짜는 7월 9일로, 어느 새 훈련소의 4주차가 끝났어. 다음 주 수요일까지만 고생하고 나면 약 일주일 정도는 거의 쉬는 시간처럼 보내고 7월 21일에 훈련소 수료를 하게 돼. 원래 일정대로라면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 건데, 지금 00 훈련소에서 나랑 같은 날에 입소한 사람 중에 확진자가 나와서 모든 훈련이 all stop 되고 1, 2주차처럼 자가격리 된 상태야. 덕분에 지금 이 편지도 누나한테 언제 닿게 될지 모르겠다.. ㅠㅠ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이야길 듣게 되어서 많이 슬퍼. 그것도 참 어이없는 방식이니까. 누나 말대로 그냥 이상한 사람 하나 마주친거고, 더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으니까 마음 잘 추스리길 바라.
누나 뿐만 아니라 학과 선배들도 대학원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누나도 대학원 컨택 메일을 넣었다는 걸 들으면서.. 와, 이제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도 다 대학원에 가기 시작하는구나. 나도 전역하고 나면 (대학원이) 얼마 멀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난 아직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응애 나 애기 새내기 시켜줘~!! (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래서 군 생활동안 다양한 분야의 논문도 읽고 전공책들도 다시 보면서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고자 해. 아까운 내 1년 반을 꽁으로 날릴 순 없잖아 ㅋㅋ
우선 목표는 세워두긴 했지만 내가 이걸 잘 지킬 수 있게 누나도 날 많이 도와줘야 해! 난 아직도 너무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선배들 도움 아니면 해낼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ㅋㅋ
난 누나가 우리 학교 대학원으로 와서 날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ㅋㅋ
나도 복학할 때 즈음 맞춰서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서 들어갈 생각이라 집 문제도 많이 고민된다는 거에 공감해. 보통 00 거리에서 많이 살더라고. 석사 과정 때는 학교로 많이 출근해야 하니까 특히 더 학교 바로 앞에 (집을) 많이 얻는 것 같아.
(중략)
나도 빨리 복학해서 자취하고 싶어 ㅠㅠ 혼자서 밥해먹고 맘대로 방 꾸미고 내 멋대로 살고 싶어! 특히 군대에 있으니까 그런 자유를 많이 갈망하게 되는 것 같아.
그래도 어느 정도 잘 적응하고 살고 있으니까, 편지도 많이 보내주고 군 생활동안 잘 살아남을 수 있게 연락도 많이 해줘야 해!
빨리 휴가 나가서 같이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휴가 나가면 연락할게!
- 장마가 끝나서 무더운 날에,
누나를 정말 많이 존경하는 J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