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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Aug 18. 2020

상사의 ‘갑질’,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 늘 참고, 양보하면 그에 걸맞은 대접밖에 받을 수 없다


남편 뒷바라지에, 치매 걸린 시부모 병시중을 하면서도 5남매를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큰 며느리가 택배로 생일 선물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상자를 열었더니, 가지런히 정리된 명태 대가리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범이 어머니는 명태 대가리만 드신다고 해서 좋은 명태 구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잘 손질해서 보내니 맛있게 드세요. 
어머님, 생신 축하합니다. 

─  큰며느리 올림


늘 참고, 양보하며, 희생하는 것이 굳어진 사람은 그에 걸맞은 대접밖에 받을 수 없다. 억울함을 참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직장에도 그런 억울함 때문에 남몰래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 팀별로 한 사람씩만 참석하는 회의에 매번 팀 대표로 나가는 회의 전담원이 있다. 그들에게 딱히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을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가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 결과, 정작 자기 업무는 시간 외 근무로 보충해야 한다.  


경조사 전담원도 있다. 핵심 인물의 경조사에는 너도나도 앞다퉈 참석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의 경조사를 챙기기 위해 주말에 지방에라도 다녀와야 한다면 누군들 참석하고 싶겠는가. 모두 ‘총대 메기’를 꺼리며 누군가에게 봉투 하나만 얹으려고 눈치를 살핀다. 그때마다 꼭 경조사 참석 전담원으로 지목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주말도, 연휴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봉투를 나르느라 바쁘다.  


그 외에도 입사한 지 10년이 넘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상사의 커피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사람, 반말이 난무하는 직장에서 수모를 견뎌야 하는 사람, 상습적으로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상사나 동료와 일하다가 번번이 승진에서 밀리는 억울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남몰래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억울하면 참지 말고 무엇이 억울한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이 그런 속사정을 알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고칠 수 있다. 예컨대, 번번이 나를 직격탄을 날린 사람이라도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억울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그들이다. 그러면서 사과는커녕 왜 이제야 말하느냐”라며 타박하기 일쑤다. 혹 떼려다가 오히려 혹 붙이는 셈이다.그렇다고 해서 억울함을 참아서는 안 된다. 상대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피하다 보면 결국 자기 속만 썩기 때문이다. 



▲ 늘 참고, 양보하며, 희생하는 것이 굳어진 사람은 그에 걸맞은 대접밖에 받을 수 없다. 억울함을 참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 직장 내 갑질… 억울할수록 대놓고 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직장 내 갑질을 참다못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도 좋고, 일도 적성에 맞는데, 팀장과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 나가기에는 너무 억울해요.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 대부분이 팀장을 싫어하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일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회사를 떠날 때 직원을 대신해서 팀장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과연, 그의 이런 행동은 옳은 것일까.


이왕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면 조용히 떠나는 것이 좋다. 떠나는 마당에 자신의 억울함을 여기저기 호소하며 떠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될뿐더러 공공의 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둥, 아무개 말로는 이런 일도 있었다는 둥, 다른 사람의 이야기까지 끌어다가 상사의 흉을 봤다가는 그들까지 원치 않은 상황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 결과, 당신의 ‘옳은 소리’는 남은 동료들에게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공격’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당신 역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집단적인 비난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왕 떠나기로 했다면 조용히 떠나는 것이 좋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회사에 남아 있을 때의 일이다.  



▲ 이왕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면 조용히 떠나는 것이 좋다. 떠나는 마당에  억울함을 여기저기 호소하며 떠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기 때문이다.



◆ ‘자신’을 주어로 억울한 점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하라


억울할수록 대놓고 말해야 한다. 더러는 속이라도 좀 시원하게 풀자는 마음에 뒤에서 투덜대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삼가야 한다. 그것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매 맞는 사람이 아프다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용히 맞고만 있는데 때리는 쪽에서 먼저 매 맞는 아픔을 알아줄 리 없다. 또한, 맞는 모습을 보며 지나간 사람들이 당신의 아픔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착각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람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타인의 고통에 무지하고 둔감하다. 그러므로 억울할 일이 있으면 확실히 말해야 한다. 단,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억울함을 호소할 때는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매우 불편하고, 억울하다.”, “어떤 상황에서 나는 억울한 기분이 든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주어로 해서 억울한 점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누구의 무례함 때문에”, “누구의 불공평한 처우 때문에”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 탓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남 탓을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 탓을 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할 뿐이다. 꼭 뭔가를 탓해야만 한다면 사람보다는 상황을 탓하는 것이 좋다. 사람을 탓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상황을 탓하면 개선하기 위해 힘을 보태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오래 억눌리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참아왔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 한 번의 폭발조차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 불편한 일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면 참지만 말고 그때그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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