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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Aug 31. 2020

“태어나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앞당긴 존재”




◆ 한국 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


1937년 4월 17일. 한 조선 젊은이가 일본 도쿄에서 돌연 사망한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일곱.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의 가족과 벗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스리고, 그의 짧은 삶을 추모하며, 애도한다.


작가 이상.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는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문학 천재였다. 

“태어나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후퇴시켰다고 말해도 될 존재”,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김기림과 박용철의 이상에 관한 평가다. 그만큼 이상이 우리 문학사에 남긴 흔적은 매우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아생전 그와 그의 작품은 빛을 전혀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상의 글은 매우 기괴하고 낯설다. 그 출현 이전 이후에도 그와 같은 글을 쓰는 문인은 없었다. 그러니 80여 년 전 그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그의 글을 가리켜 ‘정신 이상자의 잠꼬대’나 ‘어린아이의 유치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며, 그의 글을 게재한 신문사에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했다.

그런 이상의 안타까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시인 김기림이다. 김기림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지주의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능력은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던 작가와 그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상과도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은 후 매우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  앞줄 왼쪽부터 이상과 시인 김소운. 뒷줄 안경 쓴 사람은 소설가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작가이자,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할아버지).



◆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쓰다


일본에 머물던 시절 이상은 김기림에게 편지를 자주 보내곤 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이상은 낯선 이국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 차차 마음이, 생각하는 것이 변해가오. 역시 내가 고집하고 있던 것은 회피였나 보오. 흉리에 거래하는 잡다한 문제 때문에 극도의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오. 가끔 혈담을 토하고 … (중략) … 2, 3일씩 이불을 쓰고 두문불출하기도 하오. 자꾸 자신을 잃어버리면서도 ‘양심, 양심’하고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오. 비참한 일이오.

 … (중략) …

─ 나는 지금 참 쩔쩔매는 중이오. 생활보다도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의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만나서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 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만나기라도 합시다.  


이 글은 1937년 2월 10일, 음력 제야에 쓴 것으로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로, 당시 이상이 느꼈을 외로움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따. 센다이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던 김기림이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이 죽기 얼마 전에야 겨우 만났지만, 그 역시 잠시 뿐이었고,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것이 못내 미안하고, 안타까웠을까. 김기림은 이상의 돌연 죽자 그와의 추억을 담은 추도문에서 그때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전등불에 가로 비친 그의 얼굴은 상아(象牙)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염이 코 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했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나는 애써 명랑해하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피디아스의 ‘제우스’ 신상(神像)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箱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 사실 나는 그때 듀비에의 ‘골고다의 예수’ 얼굴을 연상했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箱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김기림은 여기서 시대를 앞서 살다 간 천재 이상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가 없는 헛헛한 현실을 애도하고 슬퍼한다. 그의 시 <바다와 나비>에도 그런 감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김기림이 이전에 쓴 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국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낯선 외래어도 없을뿐더러 서구 문명 세계에 대한 동경도 없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슬픔과 생의 질곡이 느껴진다. 그는 과연 무엇이 그리 슬펐을까. 생각건대, 여기서 말하는 나비’는 바다 건너 낯선 땅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벗 이상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의 못다 이룬 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삶을 슬퍼한 것은 아닐까.  


▲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세 사람. 왼쪽부터 소설가 박태원, 시인 이상, 시인 김기림.



이상이 요절한 뒤 김기림은 박태원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봄이 오니 형도 <제비>가 그리우신가 보오. 돌아오지 않는 <제비>의 임자는 얼마나 야속한 사람이겠소? 그래서 나는 동경을 지날 때는 머리를 숙이오.”


모든 죽음은 큰 슬픔을 머금고 있다. 이상의 죽음 앞에서 김기림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리라.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과 슬픔을 억누른 채 벗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슬프다. 






箱은 필시 죽음에 진 것은 아니리라. 箱은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까지도 손수 길러서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箱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과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箱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이 없다. 箱의 시에는 언제나 箱의 피가 임리(淋漓, 흠뻑 젖어 흘러 떨어지거나 흥건함)하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 부서진 배)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다방 N 등의자에 기대앉아 흐릿한 담배 연기 저편에 반나마 취해서 몽롱한 箱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 비극’을 느끼고 소름이 끼쳤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켜 있었다. 파리에서 문화 옹호를 위한 작가대회가 있었을 때 내가 만난 작가나 시인 가운데 가장 흥분한 것도 箱이었다.   

箱이 우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는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惡)한 정령(精靈)이었다. 악마더러 울 줄을 모른다고 비웃지 마라. 그는 울다 울다 못 해서 인제는 누선(淚腺, 눈물샘)이 말라버려서 더 울지 못하는 것이다. 箱이 소속된 20세기 악마의 종족들은 그러므로 번영하는 위선의 문명을 향해서 메마른 찬웃음을 토할 뿐이다.   

흐리고 어지럽고 게으른 시단(詩壇)의 낡은 풍류에 극도의 증오를 품고 파괴와 부정에서 시작한 그의 시는 드디어 시대의 깊은 상처에 부딪혀서 참담한 신음소리를 토했다. 그도 또한 세기의 암야(暗夜, 어두운 밤) 속에서 불타다가 꺼지고 만 한줄기 첨예한 양심이었다. 그는 그러한 불안, 동요 속에서 ‘동(動)하는 정신’을 재건하려고 해서 새 출발을 계획한 것이다. 이 방대한 설계의 어귀에서 그는 그만 불행히 자빠졌다. 箱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 (하략) …   

ㅡ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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