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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Sep 17. 2020

이상이 애인과 야반도주한 여동생에게 쓴 편지




▲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시절의 이상과 자화상. 그는  글보다 미술에서 먼저 두각을 보였지만, 큰아버지 김연필의 강요로 인해 화가가 아닌 건축가의 삶을 택해야만 했다.



◆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여동생을 응원한 오빠 이상의 애틋함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시인 이상이 부모 몰래 애인과 만주로 떠나는 여동생, 김옥희에게 쓴 편지 ‘여동생 옥희 보아라’에 나오는 문장이다. 옥희는 26년 후에야 오빠 이상에게 ‘오빠의 그윽한 사랑을 항상 느끼면서도 한 번도 그런 오빠를 이해하는 착한 동생이 못 되었다’라는 답장을 썼다. 하지만 그때는 그녀를 이해해주는 오빠가 이 세상에 없었다.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이 남자 친구와 몰래 만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은 깊은 시름에 잠긴다. 철부지 여동생을 붙잡아야 할지, 그대로 떠나게 해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고 세상을 배우게 해야 할지. 결국 오빠 이상은 여동생의 행동을 이해하는 오빠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축복한다. … 어느덧 어른이 되어 애인과 함께 만 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1936년 9월 잡지 《중앙》에 발표한 이 글의 서두에서 이상은 ‘세상의 오빠들도 모두 보시오’라며, 여동생을 집안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하던 그 당시 세상의 오빠들을 향해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 외치고 있다.  


▲ 경성고등공업학교 시절 건축과 실습실에서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 이상. ⓒ 사진 출처 ㅡ 문학사상 



◆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글을 쓴 작가 이상이 아닌,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 김해경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편지 


사실 이상은 글보다 미술에서 먼저 두각을 보였다. 7살 담배 ‘칼표’ 껍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4살에는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으로 입상하며 미술의 재능을 발견했다. 하지만 큰아버지 김연필은 그가 미술보다는 건축기사가 되기를 바랐다. 


해경(이상의 본명)아, 너는 건축과를 가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기술자는 배는 곯지 않는단다. 가난한 환쟁이는 절대 안된다.


결국, 이상은 큰아버지의 바람대로 경성공전(지금의 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가슴이 시키는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법. 글이 쓰고 싶었던 이상은 끝내 건축기사의 삶을 포기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글쟁이의 삶을 택한다. 

그러나 보니 단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가장으로서의 무능력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집을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왔더니, 여전히 가난하게 사실 뿐이었습니다.

… (중략) …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ㅡ 이상, <슬픈 이야기> 중에서


이상은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냐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이상은 젖먹이 무렵 큰아버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가 스무해 넘게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글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고독과 우울이 진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여동생의 앞날을 응원하며 쓴 편지에서만은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오빠로서 가족을 아끼는 애틋함이 진하게 묻어나 있다. 이를 통해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글을 썼던 작가 이상이 아닌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 김해경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동생 옥희 보아라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

팔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연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차로 가 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우리 둘이 떨어지기 어렵소이다”하고 내게 그야말로 ‘강담판(强談判)’을 했다면 낸들 또 어쩌랴. 암만 ‘못한다’고 딱 거절했던 일이라도 어머니나 아버지 몰래 너희 둘 안동시켜서 쾌히 전송(餞送)할 내 딴은 이해도 아량도 있다. 그것을, 나까지 속이고 그랬다는 것을 네 장래의 행복 이외의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네 큰오빠 나로서 꽤 서운히 생각한다.

… (중략) … 

3남매의 막내둥이로, 내가 너무 조숙인데 비해서 너는 응석으로 자라느라고 말하자면 ‘만숙’이었다. 

학교시대에 인천이나 개성을 선생님께 이끌려가 본 이외에 너는 집 밖으로 10리를 모른다. 그런 네가 지금 국경을 넘어서 가 있구나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어린애로만 생각하던 네가 어느 틈에 그런 엄청난 어른이 되었누.

부모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 (중략) …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축복한다.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하루 5전 받고 모델 노릇 하여준 옥희, 방탕 불효 한 이 큰오빠의 단 한 명밖에 없는 이해자인 옥희,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그 애인과 함께 만 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이틀이나 걸려서 이 글을 썼다. 두서를 잡기 어려울 줄 알지만,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세상의 여러 오빠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만을 사다오. 

─ 닷샛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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