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부처님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홀로 깨우친 후에 했다는 말로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나요, 오로지 나만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유아독존’만을 따로 떼어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나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가장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진시황(秦始皇)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맨 처음 황제라는 뜻에서 ‘시황제(始皇帝)’로 칭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 권력자였다.
진시황 정(政). 그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하나의 중국’이라는 의식을 중국인의 머릿속에 깊게 새긴 황제다. 그런 그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이다. 그의 생부가 여불위(呂不韋)일지도 모른다는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수수께끼의 주인공인 여불위는 자신의 애첩 조희(趙姬)를 진나라의 공자 이인(異人, 훗날의 장양왕)에게 바침으로써 진시황의 출생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영원히 남겼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즉, 진시황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억측에 불과하다.
진시황의 출생을 둘러싼 논란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시작되었다.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서 진시황은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불위는 한단(邯鄲, 조나라의 수도)의 여자 중에서 매우 아름답고 춤 잘 추는 여자와 함께 살다가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를 보고 반한 자초(子楚)가 여불위에게 그녀를 청했다. 여불위는 처음에는 크게 화를 냈지만, 집안이 무너져도 진기함을 낚으려는 일을 생각해 마침내 그녀를 자초에게 바쳤다.
― 《사기》 〈여불위열전〉 중에서
그런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서는 진시황이 장양왕(莊襄王) 자초의 아들이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진시황제는 진 장양왕의 아들이다. 장양왕이 진나라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의 첩을 보고 매료되어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으며 시황제를 낳았다.
― 《사기》 〈진시황본기〉 중에서
진시황의 어머니 조희는 자초와 결혼 후 12개월여 만에 정을 낳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 아닌 장양왕의 아들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출생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또한, 사마천은 왜 서로 다른 기록을 남겼을까.
사마천이 태어난 한나라는 진나라 멸망 후 세워졌다. 또한, 그가 활동할 당시 한나라의 황제였던 한 무제(漢武帝)는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이는 무조건 극형으로 다스릴 만큼 사나운 폭군이자, 흉노를 몰아내고 한나라의 황금기를 만든 성군이기도 했다. 진시황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건 진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전까지 최고의 황제로 알려진 진시황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는 진시황의 출생을 둘러싼 논란만큼 좋은 이야깃거리는 없었으리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