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도망치던 중 현령으로 일하던 진궁(陳宮)에게 붙잡혔을 때의 일이다.
진궁의 호의로 목숨을 구한 조조는 그와 함께 도망치던 중 아버지 조숭(曹嵩)의 의형제인 여백사(呂伯奢)의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여백사는 진궁이 조조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마치 친아들을 구해준 것처럼 감사를 표하고, 후하게 대접하기 위해 가족에게 돼지를 잡으라고 한 채, 술을 사러 옆 마을에 다니러 갔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조조는 여백사의 가족이 칼을 갈자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다. 심지어 외출 후 돌아온 여백사마저 죽였다. 그러고는 함께 있던 진궁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 사람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 《삼국지》 권1 〈위서〉 ‘무제기’ 중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탓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항상 나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처세의 기본이다.”
한나라 말 천하에 대란이 일어 영웅호걸이 함께 봉기하니, 원소가 사주(四州)에서 호시(虎視, 범처럼 노려봄)함에 강성하여 대적할 자가 없었으나, 태조(조조)가 주략과 지모를 내어 우내(宇內, 천하)를 편달(鞭撻, 독려함)했다.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법술(法術)을 취하고, 한신(韓信)과 백기(白起)의 기책(奇策)을 갖추었고, 관직은 재능에 따라 부여하되, 각각 그 그릇에 맞게 썼으며, 사사로운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한 계산에 임해 옛 허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마침내 황기(皇機, 황제의 정무)를 능히 총람(總禦)하고, 홍업(洪業)을 이룬 것은 밝은 지략이 뛰어났기 때문이니, 가히 비상한 인물로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고 할 만하다.
― 《삼국지》 권1 〈위서〉 ‘무제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