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처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낮춤, 즉 ‘덕(德)’이다. 짚신을 만들어 팔던 가난한 장사치에 불과했던 그가 조조, 손권과 같은 준비된 영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유비는 한 황실의 종친이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한눈팔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신중한 행동거지와 인자한 마음 씀씀이로 인해 일찍부터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기회가 찾아오자 마침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청나라의 문인 정판교(鄭板橋, 본래 이름은 정섭. ‘판교’는 그의 호)가 한 말로, “바보인 척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는 뜻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함부로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화를 당하기 쉬우므로 “자신을 철저히 감추며 바보인 척 살라”는 그만의 처세술인 셈이다.
손자(孫子) 역시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상대의 의도는 드러나게 하고, 나의 의도는 보이지 않게 해야 이길 수 있다(形人而我無形).
아닌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위장술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자신이 지닌 패를 모두 보여주는 것은 하수(下手)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일수록 자신을 숨기는 데 능숙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비는 진정한 고수였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천둥소리에 놀라는 척하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는가 하면 유약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여포와의 싸움에서 패해 오갈 곳이 없어진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던 때의 일이다. 전장을 누비며 천하 경략의 큰 뜻을 키우던 그는 갑자기 채소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관우와 장비가 답답해하며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어….”
유비는 살아남기 위해서 겁 많고 소심한 범부(凡夫)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도광양회(韜光養晦)’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라는 뜻이다.
머리 좋고, 의심 많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 유비가 목숨을 보전하려면 자신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함부로 능력을 드러냈다가는 언제든지 목이 달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비의 이름인 ‘비(備)’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참으면서 준비한다’라는 것과 ‘모두 갖추었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자(字)는 더 특별하고 무게감 있다. 유비의 자는 ‘현덕(玄德)’으로 ‘현묘한 덕’이라는 뜻이다. 노자(老子)는 ‘현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행해도 그 공에 의지하지 않으며, 길러도 주재하지 않는 것을 이르러 ‘현덕(玄德)’이라고 한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56장 중에서
이를 해석하면, “자신의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生而不有), 어떤 일이건 과장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겸허하게 행동하고(爲而不恃),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권한을 이양하고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長而不宰)”라는 것이다. 또한, 노자는 “덕으로 마음을 얻으려면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유비는 노자의 그 가르침을 잠시도 잊지 않고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여가며 상대의 경계심을 풀었다.
알다시피, 유비는 조조나 손권과 비교했을 때 매우 평범한 인물이었다. 또한, 가진 자원도 적었을뿐더러 출발 역시 매우 늦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수많은 난관과 실패를 극복하고, 결국 삼국의 한 축을 담당하며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다 할 세력도, 특출한 능력도 없던 유비가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의와 겸손으로써 사람을 대했기 때문이다.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말이 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말로,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부드러움으로 대응하는 것에 당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유비를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그가 정말 무능한 사람이었다면 백성과 부하들의 마음 역시 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비는 덕장(德將)이었다. 이것이 그가 수많은 영웅호걸을 제치고 끝까지 조조와 끝까지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비결이자, 많은 사람이 그를 배우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