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락된 진실과 침묵 속의 목소리를 찾아서
‘광복’과 ‘건국’ 사이, 말하지 못한 3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해방’만이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지배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은 북위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고, 그 경계선은 곧장 이념의 경계이자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는 선이 되었다.
해방 이후 3년,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시기는 한반도 역사의 갈림길이자 분단과 냉전, 그리고 전쟁의 씨앗이 뿌려진 격동의 시기였다. 제주 4·3 항쟁, 여수·순천 사건, 미군정 하의 좌우충돌과 각종 테러, 보도연맹 결성과 탄압 등의 각종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이 시기를 단지 ‘혼란기’ 정도라고 만 할 뿐 더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이 잊힌 시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서둘러서, 한쪽의 역사만을 기억하기로 했는가?”
전쟁의 그림자, 민간인의 얼굴을 지우다
1950년 한국전쟁은 단지 이념 대립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축적된 분열과 증오, 국제정세의 충돌이 빚어낸 냉전의 첫 전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과서 속 전쟁은 대부분 군사 작전 중심의 시간순으로만 설명할 뿐이다. 인천상륙작전, 중공군의 개입, 흥남 철수 등 ‘전략적 순간’은 상세히 서술되지만,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이념 낙인 같은 폭력은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취급된다.
특히 국민보도연맹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제주 민간인 학살, 빨치산 토벌 작전 중 발생한 잔혹 행위들은 ‘좌익과 우익의 충돌’이라는 모호한 설명 아래 책임과 진실이 희석된다.
그러나 역사는 말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간주했던 순간들, 그로 인해 침묵 속에 사라진 수만 명의 이름들을 기억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민주주의의 기반을 되돌아보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누구의 기적인가?
1970년대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중화학 공업 육성, 새마을운동, 수출 100억 달러 달성 등은 교과서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로 설명되며 찬양 일색이다. 하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억압된 노동권, 분단 체제를 통한 저비용 통치 구조가 있었다. 예컨대,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이 맨몸으로 저항했던 현실은 산업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산업화는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었는지는 묻히거나 개인의 비극으로 축소될 뿐이다.
“누구의 희생이 있었는가? 그는 왜 기억되지 않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성장 신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광주의 진실은 어디까지 말해졌는가?
1980년 5월 광주. 많은 시민이 군인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하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당시 군부 정권은 이를 ‘폭도 진압’이라 규정했고, 그 프레임은 오랫동안 진실처럼 유포되었다.
오늘날 5·18은 ‘민주화 운동’으로 교과서에 명시되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가?”
“시민들은 왜 무장할 수밖에 없었는가?”
“광주는 왜 고립되었는가?”
“그리고 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를 부정하는 이들이 존재하는가?”
광주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진실을 마주하려는 민주주의의 시험지다. 말해진 것보다 말하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IMF는 경제만의 위기였는가?
1997년, 외환보유고가 바닥났고,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재벌은 구조조정 당하고,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으며, 수백만 명의 실직자가 거리로 내몰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경제 시스템만의 붕괴가 아니었다. 당시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의 제도화, 비정규직의 일상화, 청년 실업, 고용 없는 성장, 가의 해체와 공동체 붕괴까지—IMF 이후 한국 사회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되었다. 하지만 교과서 속 IMF는 ‘극복한 위기’로만 요약된다. 그 뒤에 남은 상실감과 불안정한 삶, 구조적 양극화는 지금도 한 세대 전체의 생애 경로를 지배하고 있다는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역사는 누가 쓰고, 무엇을 남기는가?
역사는 언제나 선택과 배제의 결과다. 어떤 사건은 강조되고, 어떤 인물은 영웅화되며, 어떤 피해는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다. 특히 근현대사는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구성되기 쉬운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역사 역시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 선택하고 배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국가의 공식 기록에 편입되지 않은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의 기억으로 대한민국을 기억하고 있는가?”
역사는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거울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나침반이다. 이는 미래를 설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 문장 요약
한국 현대사의 진실은 공식 기록 속에 담기지 않은 목소리와 잊힌 이름들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