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박물관, 약탈의 역사

— 누가 문명을 보존하고, 누가 문명을 빼앗았는가?

by 마테호른

박물관, 인류의 보고인가, 약탈의 전시장인가?

고대 이집트의 석상, 아프리카 베냉의 청동 조각, 중국 당나라의 도자기, 인도의 힌두 조각상, 그리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불상들. 이들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의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화려한 유산들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누군가의 문화재가 누군가의 소장품이 되고, 다시 인류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될 수 있었던 과정은 과연 정당한가?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제국주의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 유럽의 열강은 무력을 동반한 식민지 확장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그 지역의 역사와 예술, 정신까지 수탈했다.


박물관은 그 수탈의 결과를 축적하고,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곳은 단순한 ‘수집’의 장소가 아니라, 제국의 기억이 봉인된 ‘문화 권력의 진열장’이었다.




약탈의 수사학: 제국의 이름으로 보존하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문화재를 가져간 이유를 ‘보존’이라 말했다. 그들은 현지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비효율적 보존 방식, 열악한 환경 등을 이유로 들어 문화재를 ‘구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다수의 유물은 무력과 협박, 불법적인 경매, 또는 단순한 약탈을 통해 수집되었다.


로제타석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프랑스군이 수집했으나, 나중에 이를 영국군이 빼앗아 대영박물관으로 옮겼다. 이 유물은 아직도 이집트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엘긴 마블(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은 19세기 초, 당시 오스만 제국의 점령하에 있던 그리스에서 영국 외교관 엘긴 경이 가져갔다. 그리스 정부는 지금까지도 이 유물의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


베냉 청동 조각상은 1897년 영국군이 나이지리아의 베냉 왕국을 침공하며 대규모로 약탈한 유산이다. 이 유물은 현재 유럽 여러 박물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으며, 최근 일부가 나이지리아로 반환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사례에서 박물관은 단순히 ‘보관자’가 아니라, 약탈의 공동 주체였고,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시각적으로 정당화하는 공간이었다.




박물관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기는가?

우리는 종종 박물관을 ‘중립적’인 장소로 생각한다. 하지만 박물관은 역사를 선택적으로 전시하고, 해석하는 장소이다.


박물관의 전시 방식은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기는가?”


제국주의 박물관은 서구 중심의 진보적 역사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물을 배치한다. 비서구 세계의 문화는 고정되고, 이국적이고, 전통적이며, 때로는 ‘사라진 문명’으로 묘사된다.


박물관의 전시 설명문은 유물을 제국주의의 정복과 탐험의 맥락에서 소개하며, 문화재가 원래 있던 장소나 민족의 서사는 흐릿하게 처리된다.


결국 박물관은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는 장소다. 전시된 유물은 문명의 증거이자, 식민의 흔적이다.




반환 논쟁: 정의는 어떻게 복원되는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약탈당한 문화재의 반환 요구가 세계 곳곳에서 거세지고 있다. 그 요구는 단순히 물리적인 ‘귀환’만이 아니라, 문화적 주권과 역사적 정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환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박물관들은 “유물은 국제법에 따라 소장되고 있다”라고 항변하며, “원래 국가에 반환하면 관리가 어렵다”라는 현실론을 내세운다. 반면, 원 소유국들은 “유물은 민족 정체성과 문화의 일부”라며, “그 지역의 아이들이 자기 문화를 자기 눈으로 볼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단순한 과거의 소유권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상처를 마주 보고, 오늘날의 세계 질서와 문화적 권력 관계를 다시 묻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이다.




박물관은 누구의 공간이어야 하는가?

박물관은 더 이상 ‘유산의 보존 공간’이라는 수사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과거를 전시하는 동시에, 과거의 불의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진정한 인류 유산의 공간이라면, 그곳은 모든 문화가 동등하게 기억되고, 모든 국민이 자기 역사와 조우할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보존’이라는 이름의 약탈은 이제 끝나야 한다. 문화재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기억이며, 목소리이며, 그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빼앗길 수 없는 ‘존재의 권리’이다.




한 문장 요약

제국주의가 남긴 박물관은 문명을 수호한 공간이 아니라, 문명을 빼앗고 지배를 정당화한 전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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