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by 마테호른

1936년 가을, 정릉 산중 암자에서 마주한 이상과 김유정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래도록 머문다.


눈에 띄게 삐쩍 마른 김유정을 바라보며 이상이 물었다.


“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을 잃은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 형! 김 형(이상, 본명은 김해경)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유정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동반자살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김유정은 단호히 거절했다.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비쩍 마른 그의 가슴이 부풀었다 구겨졌다 하는 모습을 본 이상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를 지켜보다가 못내 슬픈 얼굴로 뒤돌아서야 했다.


“김 형! 저는 내일 아침 차로 동경으로 떠납니다.”

“그래요? 또 뵙기 어려울 걸요.”


이 말을 끝으로 김유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만남이었다.


한쪽은 이미 삶의 끝을 직감한 듯 죽음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쪽은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일을 향한 소설의 불꽃을 품고 있었다.


결국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 사람은 동경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고,

다른 한 사람은 병상에 누운 채 글을 쓰다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마쳤다.


나는 이 장면을 곱씹을 때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떠올리곤 한다.

쉰을 훌쩍 넘기다 보니, 하나둘 곁을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

어떤 이는 사정이 달라져 멀어졌고,

또 어떤 이는 천명을 다해 더 이상 부르지 못할 이름이 되었다.


젊은 날, 우리는 그저 오래 함께할 줄 알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큰소리로 웃을 때,

헤어지며 “다음에 보자” 인사할 때,

그것이 영영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앞뒤로 흩뜨려 놓고, 운명은 말도 없이 친구들을 데려간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우정이란 그저 함께 있던 시간이 아니라, 서로에게 남겨준 흔적이라는 것을.

사소한 말투 하나, 낡은 사진 한 장, 어느 날 문득 귀에 맴도는 웃음소리 같은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또 그립게 만든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조금 더 자주 안부를 물었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갔더라면,

서툰 위로라도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끝내 하지 못한 말은 이제 내 마음에만 고여 있을 뿐이다.


오늘, 문득 김유정이 했던 그 대답이 떠오른다.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떠난 이들이 더는 내일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남아 있는 내가 내일을 살아가는 한, 그 우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나를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며, 또 미안해하며, 희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전 05화우분투!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