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에 대하여

by 마테호른

여름이면 누구나 한 번쯤 입에 올리던 말이 있었다.


‘피서(避暑).’


‘시원한 곳으로 몸을 옮겨 더위를 피한다’는 뜻의 이 말은, 한때 신문 기사 제목에도, 편지 글귀에도, 또 사람들 대화 속에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자리는 ‘휴가’라는 말이 차지했고, ‘피서’는 서서히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나 버렸다.


언어는 늘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말이 사라졌다는 건, 단순히 단어 하나가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긴 정서와 풍경마저 함께 멀어졌다는 뜻일 것이다.


예전에는 여름 인사로 “하절기 안녕을 빕니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편지 끝에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간 그 한 줄은, 계절의 무게와 마음을 함께 담아 건네는 인사였다. 지금은 간단한 ‘잘 지내지?’라는 메시지로 대체되었지만, 그 사라진 말 속에는 아날로그 시절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다.


또 ‘전축(電蓄)’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교과서나 추억담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바늘을 올려놓으면 거칠게 흘러나오던 음악, 레코드판 위를 미끄러지던 소리의 떨림과 함께 아버지의 청춘이 묻어 있던 단어였다. 지금은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그 낡은 말은 여전히 한 세대의 젊음을 기억하고 있다.


‘홍안(紅顔)’, 붉게 빛나던 젊은 얼굴을 뜻하던 말도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홍안의 청년’이라는 표현 속에는 젊음이 가진 빛과 설렘, 그리고 한 시대의 문학적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렇듯 잊혀 가는 말들은 사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 마음 한쪽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옛날의 장면을 불러내고, 잊었던 감정을 되살려 준다.


‘피서’라는 말을 들으면 강가에 돗자리를 펴고 수박을 갈라 먹던 여름날의 풍경이 떠오르고, ‘전축’이라는 단어는 오래된 거실에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와 함께 젊은 날의 집안을 되살린다. ‘하절기 안녕’은 손글씨 편지의 온기를, ‘홍안’은 푸르렀던 청춘의 얼굴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낸다.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말들, 사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숨 쉬며, 때때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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