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은 어른

by 마테호른

직장 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술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불콰해질 정도여서, 스스로 술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술 마시는 사람이 없었던 영향도 컸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서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술맛을 알아서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은 내게 그저 쓴물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고단한 직장생활을 버티는 데 있어 그만한 만병통치약(?)도 없었다.
운동을 하자니 하다 보면 되레 스트레스가 쌓여 싫었고, 동호회 활동을 하자니 낯을 많이 가렸다.


속이 깎이는 아픔을 겪는 동안 주량은 점점 늘어갔고, 말도 부쩍 많아졌다.
그러자 평소에 사이가 그리 두텁지 않아 거리를 두던 친구들과도 만나는 횟수가 늘었다.
그때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간의 서먹함을 없애고, 오래가지 않을 의리와 우정을 말하며 웃곤 했다.


지금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모임도 뜸해졌다. 나이 들면서 대부분 친구가 제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굳이 묻지 않았다. 이심전심으로 다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도 더러 있다.

그들은 여전히 한창때처럼 두 주불사를 자랑하며, 예전 같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말하곤 한다.
가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다섯 살 아이가 떼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나 자신도 한때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이제 나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웃을 수 있다.
철없던 나와, 여전히 철들지 않은 주변 사람들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삶의 시간은 결국 사람을 조금씩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묻는다.


남은 삶에서 나는 어떤 관계를, 어떤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소중히 할 것인가?
삶의 내공이 쌓이면서 알게 된 작은 지혜들이, 내 하루하루를 조금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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