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상, 김유정의 동반자살이 실패한 이유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된 문학 천재 이상과 김유정의 우정

by 마테호른




◆ 다른 듯 서로 닮은 이상과 김유정의 삶


1935년 봄,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유정이 낯을 심하게 가린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면,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요, 투사와도 같았다. 그러니 성격적으로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우정 역시 남달랐다.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등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학과 풍자로 대변되는 김유정의 글과 허무와 초현실주의로 대변되는 이상의 글을 생각하면 얼핏 두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매우 컸고, 때로는 작품 속에 서로의 삶을 투영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상이 소설체로 쓴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보면 김유정의 모습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삶을 살다간 그들의 삶에 관한 안타까운 반추는 아닐까.



이상-김유정.jpg ▲ 절친한 문우이자 단짝이었던 이상(왼쪽)과 김유정



◆ 이상의 동반자살 제의에 끝까지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던 김유정


1936년 가을, 이상은 정릉 근처 산중 암자에서 요양하고 있던 김유정을 찾았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지만, 정작 본심은 따로 있었다.

눈에 띄게 삐쩍 마른 김유정을 바라보며 이상이 물었다.

“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 형! 김 형(이상.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유정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기는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비쩍 마른 김유정의 가슴이 부풀었다 구겨졌다하는 것을 본 이상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못내 슬픈 얼굴로 뒤돌아서야 했다.

“김 형! 저는 내일 아침 차로 동경으로 떠납니다.”

“그래요? 또 뵙기 어려울 걸요.”

이 말을 끝으로 김유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상의 제안을 김유정이 완곡히 거절한 셈이다. 그는 내년 봄에도 소설을 쓰겠다”라며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한 채 결국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죽기 11일 전 절친한 벗이자, 휘문고보 동기생인 소설가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 <필승전(‘필승’은 안회남의 본명)>에 당시 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흥망)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 (중략) …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해다오. 요즘 나는 가끔 울면서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일뿐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 시대를 앞서 간 두 문학 천재, 이상과 김유정


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은 끝내 눈을 감고 만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이상 역시 도쿄의 길을 걷던 중 돌연 사망한다.


연이은 비보에 그의 가족과 벗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과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먼저 간 벗에 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끄집어냈다. 짐짓, 태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 (중략) …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백 자 한 장에 대돈 50전야라를 받는 원고료를 바라고, 그는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면서도 소설을, 수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쓴 원고의 원고료를 받아서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버젓하게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지.

─ 채만식, <밥이 사람을 먹다 ─ 유정의 굳김을 놓고> 중에서


이상과 김유정!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가난과 고독과 싸우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 이상과 김유정의 상, 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은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동주 최후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