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역사는 종종 밤에 쓰인다.
칼이 먼저 움직이고, 말은 나중에 따라온다.
계유정난의 밤이 그랬다.
권력의 이름으로 칼이 뽑혔고, 조정은 피비린내로 잠겼다.
살아남은 자는 입을 다물었고, 죽은 자는 기록으로만 남았다.
그 밤 이후,
조선의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아직 글씨도 온전히 익히지 못한 아이,
단종은 왕위에서 쫓겨났고
역사는 그를 ‘폐위된 임금’이라 불렀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그 아이는 정말 혼자였을까?”
영화 속 단종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난 비운의 군주가 아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동시에 어린 아이였다.
겁을 먹고, 밤에 잠들지 못하고,
누군가의 발소리에도 몸을 움츠리기 일쑤였다.
왕의 호칭이 사라진 자리에는 두려움만 남아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권력의 이동이 아니라,
권력에서 밀려난 뒤의 시간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 곁에 한 사람이 있다.
엄홍도.
엄홍도는 위인이 아니다.
그는 혁명을 일으키지도, 칼을 들고 싸우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하나를 선택했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그는 남았다.
왕이어서가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엄홍도의 눈빛에는 거창한 충절 따위는 없다.
대신 이런 마음이 있다.
“이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
그 마음 하나로 그는 역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에 남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엄홍도는 ‘왕과 함께 산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왕과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종과 함께 있다는 건 권력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고,
침묵 속에서 매일을 버티는 일이며,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묻지 않는다.
“이게 옳은가”를 따지기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가”를 선택한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온다.
역사는 늘 큰 결단을 칭송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건 이런 작고 고독한 선택들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종의 비극이 아니라,
엄홍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왕은 폐위될 수 있지만,
사람을 지키는 마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피로 시작된 계유정난의 밤은
권력의 승리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다른 승리를 보여준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 사람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의 승리.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마음에 오래 남는 건
화려한 장면도, 거대한 비극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한 사람의 얼굴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역사는 왕을 기억하지만, 삶은 엄홍도를 기억한다고.